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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기억의 단상 2021년 1월호

by 석류

언제부터 떡볶이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자연스럽게 떡볶이는 내 일상으로 스며들었으니까. 떡볶이를 좋아하지만, 정작 나는 매운 떡볶이를 못 먹는다. 매운 음식 자체를 잘 못 먹기 때문이다. 매운 걸 먹었다 하면 눈물샘이 자동으로 폭발하고, 눈앞이 순간적으로 흐려질 정도로 힘들었다. 그래서 매운 음식들을 되도록 피하며 살아왔다.


매운 걸 못 먹어서 딱히 불편한 점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떡볶이만큼은 이상하게도 달랐다. 새빨갛고 걸쭉한 양념을 온몸에 두르고 있는 떡과 어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매운 걸 잘 먹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러한 생각은 나를 매운 떡볶이에 도전하게 만들기도 했다.


매운 걸 잘 먹지 못하다 보니 매운맛으로 유명한 떡볶이들을 먹을 때면 항상 치즈를 추가해 먹었다. 치즈를 넣으면 매운맛이 중화되어 매운 걸 잘 먹지 못해도 버틸 만했으니까. 그러나 꽤 난이도가 높은 떡볶이는 치즈를 추가해도 매웠다.


그런 떡볶이를 먹은 날에는 언제나 입안이 매운 열기로 한참 동안 가득 찼다. 소방차가 달려와 이 열기를 꺼주지 않는 이상, 매운 열기가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느낌에 미친 듯이 시원한 음료를 계속 연거푸 들이키곤 했다.


그 정도로 매운 걸 잘 못 먹으면서도, 아주 가끔은 매운 본연의 맛 그대로 먹는 순간이 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나는 매운 떡볶이를 원형의 상태 그대로 먹었다.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은 매운맛에 집중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약간은 날아가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물론, 먹고 난 뒤에 후폭풍은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내가 딱 그랬다. 감당하기 힘든 후폭풍이 몰려올 것을 알면서도 스트레스에 잠식당한 날은 매운 떡볶이를 꼭 먹었으니까.


*


근래는 매운 떡볶이 대신 적당히 달고 매콤한 떡볶이들을 자주 먹었는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다른 음식을 먹게 되었다. 평소에 자주 먹어서 그런지 스트레스가 심한 날은 평소에 잘 먹지 않는 다른 음식이 필요했다.


내가 대체재로 택한 건 마라탕. 마라탕도 요새 꽤 자주 먹어서, 아마 조만간 또 다른 대체재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스트레스 해소로 떡볶이만 한 게 없었는데, 먹는 횟수를 줄여야 하나 고민해 보지만 그러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미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서 중독 수준으로 떡볶이에 환장하고 있으니까.


카카오톡에 출시된 떡볶이 이모티콘을 모조리 사고, 일주일에 아무리 못해도 1-2회는 기본으로 떡볶이를 섭취하고, 배달 어플에는 즐겨찾기 해놓은 각양각색의 떡볶이 집들이 점점 늘어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내가 떡볶이라는 이 음식에 꽤 진심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지금도 그렇다.


방금 전 떡볶이를 만들어먹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표정으로 떡볶이에 대한 글들로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누가 옆에서 보면 뭐 이렇게 진지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로 떡볶이에 정말 진심이다.


소울푸드라는 단어가 괜히 떡볶이에 붙어있는 게 아님을 깨닫는 삶은 나름 행복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 정도니까. 그런 의미에서 떡볶이는 가장 가까운 행복의 지름길이다. 그러니 당신도 젓가락을 들고 나와 함께 행복의 지름길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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