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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기억의 단상 2022년 11월호

by 석류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결정 되었다.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로. 아니 에르노가 수상했다는 소식을 물류 센터 근무 후 퇴근길에 접하면서, 나는 벅차 오르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마땅히 타야 할 사람이 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에르노라면 충분히 그럴만한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가니까.


노벨 문학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개인적 기억의 집단적 억제, 소외, 근원을 파헤친 그의 용기와 냉철한 예리함.”을 노벨 문학상 선정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수상 소식을 접한 아니 에르노가 내놓은 수상 소감도 인상적이었다. “대단한 영광이자 책임이 따르는 일.” 이라고 간결하게 말하는 아니 에르노의 목소리에서 나는 그 수상 소감이야말로 그녀의 작품들과 닮아 있구나하고 느꼈다.


맨 처음 아니 에르노의 작품을 접한 건 2015년 가을이었다. 그 해 가을 나는 무척이나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었고,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지금은 번아웃이 와도 꾸역꾸역 한 줄이라도 글을 쓰지만 그 때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매일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있던 내게 함께 일하던 이가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책을 읽는 일련의 행위가 그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거 였다. 책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했다면, 나는 아니 에르노의 작품을 더 늦게 만났을 지도 몰랐다.


추천 받은 <단순한 열정>의 책장을 넘기는 순간, 손끝이 뜨겁게 달아오름을 느꼈다.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뜨거웠고, 금방이라도 데여버릴 것만 같은 화끈거림을 느끼며 순식간에 <단순한 열정>을 다 읽었다. 책장을 덮는 순간, 나는 생각했다.


‘나도 아니 에르노처럼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단순한 열정> 이후 나는 아니 에르노의 팬이 되었고, 국내에 번역된 그녀의 책들을 틈이 날 때마다 찾아 읽었다. 근래 들어서 봇물 터지듯이 그녀의 더 많은 작품들이 국내에 번역 되었는데, 그 모습을 보며 ‘이제 번역이 되지 않아서 읽지 못할 책들은 없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된 지금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만약 번역되지 않은 작품이 있다 하더라도 순차적으로 다 나오게 될 테니까.


자신이 체험하지 않은 허구는 절대 쓰지 않는 작가, 아니 에르노. 몇 해 전 그녀에게 보내는 온라인 편지를 띄웠던 게 떠오른다.


얼마 전 스팸 메일함에는 프랑스어 제목으로 된 메일이 왔는데, 예전에 받았던 프랑스어로 된 광고 메일일 것 이라 생각하고 확인하지 않고 지워버린 게 갑자기 마음에 걸린다. 어쩌면, 정말 그 편지가 전달되어 아니 에르노가 답장을 보냈을 것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왜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을까.


사라진 메일을 다시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어떻게든 그녀와 닿을 방법이 언젠가는 생기리라 믿는다. 만약 아니 에르노에게 내 목소리가 닿게 된다면 꼭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쓴 그 글들은 나를 언제나 뜨겁게 만들었고, 때로는 깊디깊은 심연에서 건져 올려주는 하나의 동아줄 같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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