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단상 2023년 1월호
생각지도 못했어. 내가 너에게 빠질 거라는 걸. 우리는 국적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심지어 살고 있는 나라마저도 다른데. 처음 너를 마주했을 때 수려한 비주얼에 나도 모르게 홀렸지만, 그저 나는 웃고만 있었지.
너는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하길 기다렸던 것 같은데 나는 말없이 웃기만 했어. 그렇게 쑥스러운 듯 미소만 주고받다가 우리는 헤어졌고, 다시는 너를 마주치지 못할 줄 알았어.
우연히 다시 너와 마주쳤을 때 너는 내게 물었지. 나를 기억하냐고. 나는 단 번에 대답했지. 어떻게 너를 기억하지 못하겠냐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자신을 기억하냐고 물었지만, 이렇게 설렘으로 다가온 물음은 네가 처음이었어.
나는 너를 다시 만나서 기뻤고, 운명 같은 이끌림을 느꼈어. 그래서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네 연락처를 물어보았지.
매일 너와 라인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나는 생각하곤 해. 나와 대화하기 위해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으니 가르쳐 달라고 말하는 너를 보며 우리는 아주 먼 거리에 있지만 이어져 있다고.
어설픈 한국어로 네가 “사랑해요.” 라고 말했던 그 새벽을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것 같아. 심지어 사랑한다는 말은 아직 내가 알려주지도 않았던 말인데.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을 알았냐고 물었더니, 너는 말했지. 티비 프로그램에서 배웠다고. 그런 네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새어나왔어.
그런 너에게 나는 좋아한다고 말했고, 너는 “네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네가 더 좋아.” 라고 대답했지.
너는 다음에 우리가 다시 만나면 유창하게 한국어를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어. 오롯이 나와 대화하기 위해서. 나의 나라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했던 너.
내가 쓰는 언어, 내가 느끼는 문화, 내 일상, 그리고 나를 더 알고 싶다는 너를 보며 나는 작은 안도를 했던 것 같아. 너도 나를 좋아하는 게 맞구나 싶었으니까.
네가 나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처럼 나도 너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지금 내가 아는 건 빙산의 일각일 뿐일 테니. 너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나는 무언의 희열을 느껴.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해서 내가 쓴 편지나 책을 읽고 싶다고 말해주는 너. 그런 너를 생각하며 오늘은 어떤 단어를 가르쳐 줄까 고민하는 나.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만약 네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어질 수 있었을까. 마치 영화 <비포 선라이즈>처럼 타국에서 만난 너와 나.
언제나 <비포 선라이즈> 같은 달콤함을 꿈꾸었지만, 현실은 냉혹했었지. 비슷한 상황이 생길 뻔한 적도 있었지만 항상 엔딩은 달콤하지 않았었지. 그러나 이번엔 다를 것만 같아. 우리의 언어적 거리와 물리적 거리는 멀어도 좋은 느낌이 들어. 우리는 서로를 충분히 그리워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