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단상 2023년 9월호
요새 퇴근하고 코인 빨래방을 자주 간다. 막 해가 뜨기 시작한 새벽의 빨래방은 아무도 없이 고요하고, 나는 조용히 돌아가는 빨래를 바라보며 일본 드라마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빨래방에서 잠든 여자 주인공을 가만히 바라보며 옷을 덮어주던 남자 주인공의 모습을.
그래서 일까. 드라마를 관통하던 노래 우타다 히카루의 ‘퍼스트 러브’를 빨래방에서 듣고 있으면 마치 내가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세탁기는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문득 나는 새벽의 공기를 쐬고 싶다고 느꼈다. 빨래방 앞으로 나와 고요한 거리와 하늘을 바라보며 이제 정말 가을이 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벽에도 약간은 더웠는데, 이젠 살갗에 닿는 공기의 온도가 다르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가을을 보며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라는 걸 실감하자 기분이 묘해졌다. 올해의 나는 행복했지만, 불행했다. 그리고 불행했지만 그럼에도 행복했다. 남은 몇 달의 시간동안 나는 행복할까, 아니면 불행하다고 느낄까.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하나 있다. 내가 새벽녘의 빨래방에서 여전히 빨래를 하고, 거리를 바라보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거라는 걸.
하늘이 완전히 밝아질 때쯤, 빠르게 회전하던 세탁기가 멈추었고 나는 익숙한 몸짓으로 세탁물을 꺼내어 세탁 봉투에 담았다. 이제 집에 가야겠다. 새벽의 감성은 빨래방에 내려 놓은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