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단상 2023년 11월호
아주 오랜만에 유등축제에 갔다. 내가 사는 도시 진주에서는 매년 가을마다 남강에 유등을 띄우는 유등축제가 열리는데, 어릴 때 워낙 많이 가서 성인이 된 후로는 유등축제에 거의 가지 않았다.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축제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휩쓸려 다니는 게 싫어서 잘 가지 않았는데, 올해는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연락해 유등축제를 구경하러 가자고 했다.
저녁으로 속을 따뜻하게 데우는 육개장을 먹고, 유등축제가 열리는 진주성을 향해 함께 걸었다. 진주성과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많이 보였고, 곳곳에서 교통 통제를 하고 있었다. 진주성 안으로 진입하니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사진을 찍기도 힘들었다.
우리가 간 날은 유등축제의 마지막 날이어서 피날레처럼 드론쇼와 불꽃놀이가 예정 되어있었는데, 그 영향 탓인지 진주성 안에는 피날레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들뜬 표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 또한 약간은 들뜬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사람들 틈에 섞여 있었다.
여덟시가 되었을 무렵, 진주성 위로 드론이 모여 들더니 쇼가 펼쳐졌다. 드론쇼는 생각보다는 금방 끝나서 싱거웠는데 대신 불꽃놀이가 압권이었다.
팡팡 터지는 아름다운 빛깔의 불꽃의 향연을 보면서 나는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영화 속에서 남녀 주인공이 함께 불꽃놀이를 보며 설레어하던 순간이 떠오르자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나는 불꽃놀이를 보며 열심히 그 풍경을 눈과 휴대폰으로 담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유등축제에 갔다는 사실도 잊혀질 테지만 휴대폰을 보면 다시금 이 순간이 떠오르게 될 테니까.
불꽃놀이가 마무리 되고 나자 사람들이 진주성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는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나가려고 하다 보니 입구는 정체가 이루어졌다. 우리는 천천히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난 뒤에 빠져나가기로 하고 주변에 있던 진주시의 마스코트인 귀여운 수달 하모 유등과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다 찍고 나자 입구의 정체가 풀렸고, 우리도 진주성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온 후에 친구는 토끼모양의 귀여운 솜사탕을 보며 사야겠다고 말했고, 잠시 후 정말 관광객이 된 것 같은 모양으로 솜사탕이 친구의 손에 들렸다.
솜사탕을 들고 남강 둔치로 내려가 걸으니 푸드존과 드라마 페스티벌을 위해 설치해둔 포토존들이 눈에 띄었다. 근래에 드라마 <무빙>을 재미나게 보았던지라 우리는 <무빙>존에서 사진을 남겼다. <무빙>속 주인공을 따라서 찍고 싶었는데, 막상 찍고 보니 코믹하게 나와서 웃음이 났다.
남강에서는 색색의 유등이 환하게 빛을 밝히고 있었고, 나는 매번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아쉽게 가지 못한 치앙마이의 유등축제 러이끄라통을 생각했다.
올해도 러이끄라통에는 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대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유등축제가 내가 사는 도시에서 열리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러이끄라통의 유등축제가 특유의 분위기로 근사하다하더라도 규모면에서는 진주 유등축제가 압도적일 테니까.
구경이 다 끝나고 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여전히 사람이 많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삶의 터전인 도시에서 관광객의 느낌을 맛본다는 것만큼 귀한 건 없으니까.
관광객의 기분으로 돌아갔던 짧은 순간들을 기억하며, 내년 가을에도 다시 유등축제에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잠시나마 다시 관광객의 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