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영화

기억의 단상 2024년 2월호

by 석류


오랜만에 무비 데이를 보냈다. 쓰리잡의 생활을 하게 되면서, 영화를 보러 가기가 힘들어졌다. 도통 시간이 나질 않았으니까. 비가 꽤 많이 쏟아져서 영화를 보러 갈까 말까 고민 하다가, 오늘이 아니면 상영시간이 맞지 않을 것 같아서 비를 뚫고 두 편의 영화를 보러 갔다.


첫 번째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 언제나 그렇듯이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은 매력적이다. 그가 만든 대부분의 영화가 완성도가 높은 편인데, 딱 두 편만이 이제까지 아쉬웠다.


일본이 아닌 프랑스와 한국에서 만든 영화들이 나는 아쉬웠다. 특유의 고레에다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나 결들이 느껴지지 않고, 2%부족한 느낌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시 믿음이 생겼다.


고레에다의 영화를 두고 나는 ‘담백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것들이 있다.’라고 항상 말하곤 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자칫 잘못하면 과잉이 될 수도 있는 것들이 전혀 과잉 되지 않았고 심지어 공감까지도 느껴졌다. 영화 속 주인공 소년인 미나토가 마치 나처럼 느껴졌으니까.


영화의 엔딩부분에서는 비가 온 후 맑은 풍경이 나왔는데, 영화를 보고 나오자 아직 밖은 여전히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비가 그치고 맑은 날이 오듯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오긴 올까라는 생각을 하며 다음 영화를 보러 이동했다.


상영 시간이 맞질 않아서, 두 번째 영화는 같은 영화관이 아닌 다른 영화관에서 관람해야 했다. 두 번째 영화는 <서울의 봄>. 이미 다 아는 역사적인 사실들이지만, 영화로 보니 더 피가 끓었다. 어렵게 겨울을 지나서 맞이한 민주주의라는 봄이 요즘은 다시 퇴색되어가는 느낌이라 씁쓸하기도 했다.


<서울의 봄>을 보고 나오자 이제 더 이상 비는 오지 않았고, 나는 비가 그친 밤거리를 걸으며 영화로 채워진 오늘 하루가 무척이나 충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가면 오늘의 세 번째 영화를 봐야지. 세 번째 영화는 코미디를 봐야겠다.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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