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기름의 땅, 오일샌드에서 보낸 2년

그래픽 노블 Ducks (오리들)을 읽

by fantas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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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피하고 싶지만 끝내 버텨야만 하는 시간을 통과한다. 도망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그저 견디는 것으로 하루를 이어 가는 시절. 케이트 비턴에게 그 시간은 2005년이었다. 그녀는 캐나다 동부 연안의 아름다운 섬, 케이프브레턴에서 대학을 갓 졸업했으나, 남은 것은 학자금 대출뿐이었다. 섬의 산업은 이미 쇠락했고, 식탁에는 빈자리가 늘어갔다. 졸업 후 학사졸업장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 그녀는 결국 돈이 흘러드는 곳, 알버타의 오일샌드로 향한다.


케이트 비턴은 2년간 석유를 추출하는 오일샌드에서 여러 현장을 옮기며 일을 한다. 그녀는 공구대여소와 후반에는 사무직에서 일을 한다. 남자들로 가득한 현장에서 그녀는 매일 여성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 던지는 시선, 무심히 건네는 말 한마디 속에 자신이 동료가 아니라 ‘대상’으로 규정되는 순간이 숱하게 반복되었다. 품평은 칭찬으로 가장되어 다가왔고, 그녀는 불쾌함을 삼키며 버텨야 했다. 동료이면서도 끝내 ‘여성’이라는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리. 불편하고 고단한 나날 속에서도, 그녀는 그들과 동료애를 느꼈다. 그들은 고향에서 보아온 아버지와 삼촌과 다르지 않았다. 외로움과 증오를 농담으로 덮으며 버티는 이들. 서로를 머저리라 부르며 웃어넘겼지만, 누구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 각자 감당해야 할 짐이 있었고, 휴일에는 또 다른 의무가 기다렸다. 파티와 웃음이 있어도 깊은 곳에는 공포와 트라우마는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그 세계는 언제나 그림자와 함께였다. 코카인에 의존하는 동료들, 그녀가 겪은 성희롱과 성폭행의 경험, 환경을 파괴하며 이어지는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와 오일샌드 주변 원주민 공동체의 삶까지. 이 모든 문제는 한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조금씩 기사화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케이트는 그것을 단순히 ‘개인들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는다. 그곳은 구조 자체가 불안정했고, 격변의 한가운데에서 채굴과 생산만을 강요당하는 현장이었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충분히 헤아려지지 않았고, 함부로 문제를 말할 수도 없었다. 말하는 순간, 해고와 낙인의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일샌드의 시간이 모두 끔찍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녀에게 마음을 열어주는 동료가 있었고, 서로의 미래를 응원하며 버텨가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제는 끝내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다. 드러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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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비턴은 이 두꺼운 그래픽노블에서 환경 문제, 노동자의 건강 문제, 원주민의 주거권까지 오일샌드를 둘러싼 거대한 층위를 담아냈다. 그가 풀어낸 인물들은 단편적이지 않다. 누구도 단순히 선하거나 악하지 않고, 각자의 사정과 그림자를 안고 산다. 그녀는 성급히 판단하거나 결론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 고민하며 그들의 빛과 어둠을 함께 기록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불안했던 것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본 시선의 무게였다. 보이지 않는 불쾌감, 아무렇지 않게 건네지는 말들이 만드는 움츠러듬. 그리고 세뇌되어 대응하지 못하게 만드는 학습된 무기력. 케이트가 그 속에서 어떻게 버텼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그 불안이 내 일처럼 스며든다. 그러나 동시에, 그곳에서도 누군가는 그녀의 곁에 서서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다는 사실이 희미한 위로처럼 다가온다. 절망과 동료애가 한 몸처럼 얽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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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즈음, 케이트와 언니 베키가 고향의 바를 향해 걷다가 한 남자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베키를 알아보고, “당신을 두고 남자들이 다 좋아했어요. 누가 먼저 자나 내기도 했죠.”라는 말을 건넨다. 그 말은 그의 언어로는 호감의 표현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듣는 이에게는 악몽 같은 기억을 불러낸다. 베키는 웃으며 “오호~ 그렇군요”라고 응수하고, 순간은 흘러간다. 함께 있던 친구들은 왜 그런 말에 가만히 있느냐고 묻지만, 그 짧은 장면은 이미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웃음으로 대응하는 법을 익힌 지난 시간이 압축되어 있었다.


『오리들』은 단지 한 여성의 회고담만이 아니다. 그것은 격변의 시기속에서 도구화된 인간들의 ‘버텨야 하는 시간’의 증언이다. 케이트 비턴은 그 시간의 무게와 불편함, 그리고 사이사이 다른 언어속에서도 건네는 위로와 동료애까지 한 권의 두꺼운 그래픽노블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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