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흰색과 검은색으로 구분된 서로 다른 두 가지 큰 방향이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큰 흐름들은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되었다. 이들 중 우리는 유색인 검은색이다. 그래서 검은 가방이 우리가 짊어져야 할 짐이다. 그런데 여기서 검은색이 아닌 다른 흐름인 하얀색 짐을 들고 가면 버겁다. 그건 우리 짐이 아니다. 우리의 흐름이 아닌 서구 문명은 어느 순간 갑자기 건너왔다. 그 이후 우리는 방향을 틀어 서구화로 나아가게 되었다.
ⓒ First Spring BY A Yang Fudong Film, P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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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우리는 그 큰 흐름을 억지로 가져왔다. 그러는 동안 잘 지켜나가야 했던 우리 고유한 맥락은 서구화되는 동시에 빠르게 사라져 갔다. 현재 우리는 우리가 가져가야 했던 우리의 짐을 뒤로한 채 내려놓고 있다.
ⓒ First Spring BY A Yang Fudong Film, P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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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우리의 흐름에 끼어든 서구 문화는 이내 눈빛이 바뀌고, 우리 모두 지켜보고만 있었다.
서구화는 결국 자신들의 맥락을 버리고 동양의 주류 문화에 편승한다. 우리는 이를 이상하다고 생각할 뿐 막지 않았다.
ⓒ First Spring BY A Yang Fudong Film, P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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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문화 정체성이란 공중에 있는 닫힌 문처럼 손을 못 대는 것이 정상이다. 정체성은 역사로부터 이어와서 생기는 것인데 갑자기 서구 문명이 문을 열고 들어와 휘저었고 단절되면서 그것이 곧 우리 문화 정체성이 되었다.
ⓒ First Spring BY A Yang Fudong Film, P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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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우리의 문화 감각을 잘 전승하며 문화 정체성을 지켜오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흐름이 끊어졌다. 우리가 짊어져야 했던 검은 짐을 들었던 사람들은 이 전승이 끊어진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서구화를 받아들인 사람들을 그냥 따라간다. 결국 바뀐 정체성은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고 손에는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부채만 들려져 있다.
ⓒ First Spring BY A Yang Fudong Film, P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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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양의 문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되거나 서양의 문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은 역사가 뒷받침해 주는 정체성을 지닌 사람과 그것이 없는 채 정체성이 되어버린 사람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우리 뒤에는 언제나 과거의 역사가 존재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거는 현재를 주시하고 있다.
ⓒ First Spring BY A Yang Fudong Film, P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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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역사를 잊고 마주하지 않는 사람은 과거 문화의 맛을 즐기지 못한다. 그들의 문화 정체성은 새장에 갇혀 있다. 반면 마주한 사람은 그 맛을 음미하며 즐길 수 있다. 이는 웃음이 새어 나올 정도로 만족스럽다.
ⓒ First Spring BY A Yang Fudong Film, P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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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우리에게 온 서양 문명과 문화. 그로 인해 서구화라는 옷을 입은 우리.
ⓒ First Spring BY A Yang Fudong Film, P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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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과거 문화는 우리에게 전파되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지만 단절되어 중간까지 밖에 쓰이지 못했다. 전파되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 우리 문화 정체성은 주류에 올라오지 못했다. 결국 위태롭게 전파되는 건 가방을 버리고 편승한 서양 문화다. 특이한 점은 서양 문화를 맥으로 지닌 우리들이 아닌 이해 안 된 백인 남성 문화가 주류라는 것이다. 마치 전차로 출발한 과거에서 자동차로 도착한 현대처럼 출발과 도착의 중간이 없다.
ⓒ First Spring BY A Yang Fudong Film, P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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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검은 가방이든 흰 가방이든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을 내려놓았다.
각 나라의 문화 정체성은 그 나라의 고유한 역사적·사회적·문화적 배경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동양 문화의 명맥을 지닌 사람이든 서양문화의 명맥을 지닌 사람이든 현대에는 주류를 따라서 그저 앞으로 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뒤를 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하다.
양 푸동은 동양 문화권 정체성의 처음 시작이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한다.
눈치채기 힘든 초봄에 빗대어 서양 문명이 주류로 정착하게 된 그 시작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가 쓰고 있던 문화에 그들이 편승하고 우리가 자각 없이 스쳐간 순간을 보여준다. 분명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봄의 순간이 곧 변화될 계절처럼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친절하게 말해준다. 뿌리가 없는 나무는 무성한 여름을 맞이하기 힘들다. 뿌리 없는 나무에게는 여름이 오거나 겨울이 오거나 겨울나무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이는 문화 제국주의에 대한 지적과 함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순간인지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작가는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뒤를 돌아 과거의 역사를 마주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그래야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명맥을 바탕으로 고유한 본래의 감각을 향유하고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지치지 않는 전차를 두 다리로 뛰어서 따라오는 과거는 언젠가는 지쳐 나가떨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