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한영교 Jul 19. 2016

0.  너의 첫 소식을 들었다, 오늘

이렇게 아버지가 되어간다 #1 : 4주 차 

<Etel adnan, poids du monde ii ,1925>


아내는 작게 울었다.  온갖 잔인한 일들을 보내는라  웬만하여서는 눈물 한 방울 없는 아내였다. 병원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모서리에서 "너무 신기해"하면서 울었다. 나도 울뻔했다. 참,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사람 앞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의 일은 모서리가 되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또 알게 되었다.  


그 날 병원에서 육아수첩이라는 것과 함께 거대한 우주 동굴 사진을 한 장 받아왔다.  뱃속의 무엇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망설였다. 아가, 아기라는 단어가 지나쳐갔지만 여태 살면서 몇 번 불러본 적도 없는 말이라 괜스레 어색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새끼, 자식이라는 익숙한 말로도 부를 수 없는 노릇이다. 무엇을 무엇으로 부르는 이름을 생각하는데 시 한편이 떠올랐다. 


이름/ 천양희

물도마뱀의 이름이 노랑무늬영원이라니요
물결무늬라는 고둥이 있다니요
풍뎅이 이름이 아침깜짝물결무늬라니요
금강입술대고둥이라는 달팽이가 있다니요
나비의 이름이 수풀떠들썩팔랑나비라니요
많첩홍매실이라는 나무가 있다니요
풀의 이름이 꽃며느리밥풀이라니요
흰눈썹울새라는 새가 있다니요

나는 그 이름 하나씩 불러봅니다

노랑무늬영원 물결무늬고둥 아침깜짝물결무늬
금강입술대고둥 수풀떠들썩팔랑나비 많첩홍매실
꽃며느리밥풀 흰눈썹울새

누구도 그 이름 끊지 못하리
그 이름에 새겨진 물결무늬자국


모든 말의 시작은 부르는 것, 이름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간다. 부르기 위해 이름을 짓는 것. 이름을 짓기 위해 세상의 모든 사전을 다 뒤져야 한다는 것도. 이름을 짓고 나면 입이 부르트도록 불러야 한다는 것도. 수많은 이름으로 당신(아가)을 부르다 혼자(또는 같이) 불어 올라야 한다는 것도요. 


어떤 무늬로 난 너를 불러야 하는 거니. 이제 아가라고 부르도록 할게. 이 낯설고 어색한 단어를 이제 입에 붙여야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우주 동굴에 있는 너의 안부를 떠올리며 "아가"라는 이름의 무늬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분명 두근두근바람무늬같은 것이겠지. 


아가야, 너를 맞을 준비를 하면서 이 철없는 나는 아버지가 될 준비를 해야겠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18.  새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