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가 들려주는 약 에세이
# 숨이 막혔다.
돈이 안 된다.
정확히 말하면 장사가 안된다. 2019년, 잘 되던 내 약국은 코로나라는 거대한 태풍을 맞았다. 모든 것이 휩쓸려 가듯, 반의반 토막을 찍었던 매출.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회복세를 보였지만, 이내 비대면이라는 비바람을 맞았다. 하지만 적응도 채 하기 전에, 경제 불황이라는 코로나보다 훨씬 큰 쓰나미가 준비할 새 없이 밀어닥쳤다. 나에게 남은 건 할 일 없이 매대를 지켜야 하는 길고 지루한 시간뿐이었다.
이 버팀의 시간은 코로나 때보다 훨씬 괴로웠다. 고통의 정도도 크고, 무엇보다도 언제쯤이면 끝날 것이라는 기약조차 없었다. 무력한 채로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모아둔 돈이 없지는 않았으나, 인생 계획이 흔들리니 정신이 없었다. 남편이 옆에서 괜찮다고 다독여주었지만, 그 말조차도 내 안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꽉 막혀버린 삶의 숨구멍을 열어보려 갖은 애를 썼다. 처음에는 하소연도 해봤으나, 지인들도 각자의 고충을 안고 살기 바빴다. 그래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유튜브나 그림 같은 부업들을 이것저것 시도했다. 하지만, 내 삶은 체질적으로 사회 변화에 너무나 민감했다. 사실 약사라는 직업이 당장 수입은 괜찮으나 생산성이 있는 직업도 아니었고, 한국 입시과정을 지나온 내 뇌는 창의력이 마른 지 오래였다.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상황은 나빠진 채로 어떠한 변화도 없으니, 나의 내면은 스트레스로 뒤덮여 곪아갔다.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현재의 나로서는 스스로 숨 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것. 이번에는 어떻게든 살아남더라도, 언젠가 있을 다음번 위기에도 똑같이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대로 두면 화병까지 나서 상황은 더 악화할 것이 분명했다. 매 순간 긴장 속에서 숨을 헐떡이던 나는 문득,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 들었다. 상황을 타개하고, 기회가 다시 찾아왔을 때 원하는 속도로 뛰려면 숨부터 제대로 쉬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의 숨통을 틔울 치료법부터 찾기 시작했다.
내 경우는, 글이었다.
# 감정의 평활근을 풀다.
나는 온전히 스스로 만들어내고, 여러 방향으로 확산 가능한 원천 IP로 돈을 벌고 싶었다. 처음에는 글이 쉬워 보였다. ‘누군가는 읽겠지.’, ‘내 생각은 특별하니까,’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주말마다 스토리 수업을 들으며 글을 써내려갔다. 새로운 영역에 접하니, 잠시나마 뭔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내 깨달았다. 나는 산소조차 희박한 ‘우매함의 봉우리’의 높은 꼭대기에 올라 있었고. 공들인 글은 아무도, 재미있다고 해주지 않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너무 오래 감정을 틀어막고 살았다. 표현하는 법도, 느끼는 법도 잊어버린 채였다. 글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내 안의 감정을 볼 수 없는데, 어떻게 타인에게 닿을 수 있겠는가. 한참을 그 아무도 없는 우매함의 봉우리에서 길을 잃고 헤맸다. 그런 나를 찾아낸 건 남편이었다. 그는 굳이 감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잘 쓰려고 하지마 말고, 그냥 써봐.’ 그 한마디에 나는 다시 일어나보기로 했다.
팔리는 글을 쓰기 이전에, 제대로 생각과 감정을 싣는 것부터 하는 것이 먼저였다. 하지만 나는 감정 자체를 말로 설명할 수도, 토해낼 수도 없으니 손끝으로라도 흘려보내는 방식을 택했다. 처음에는 그조차도 버거웠으나 괜찮았다. 글은 몇 번이고 새로 쓸 수 있고, 다시 수정할 수 있기에 처음부터 잘 쓸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완전히 굳어버린 근육을 푸는 스트레칭처럼, 글을 통해 내부 깊숙한 감정의 평활근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 그에게 감정을 대신 맡기고, 말하고, 움직이고, 감정을 터뜨리게 했다. 나는 대본 속 인물에게 내가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하게 했다. 참았던 울음을 대신 터뜨리게 했다.
# 내 삶의 천식약
여전히 경제적 상황은 바뀌지 않았으나, 나는 조금씩 숨이 트이기 시작했다. 차가운 감정들은 온기를 찾아갔고 스트레스는 오래 머물지 않고 흘러나갔다. 글을 쓰며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들에 크게 상처를 받지 않으니, 조금씩 새살이 돋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글은 내게 실제 천식약과 닮은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천식은 외부 자극에 기관지가 예민하게 반응하며 발생하는 질환이다. 꽃가루, 차가운 공기, 스트레스 같은 사소한 요인 하나에도 기도가 염증으로 좁아지며 숨을 막는다. 나 역시, 외부 자극에 삶이 막혀버렸다. 그리고 천식약은 좁아진 기도를 열어주는 기관지 확장제를 주로 사용하는데, 원인을 제거하지는 못하지만, 숨을 쉴 수 있게 도와준다. 글도 그랬다. 감정을 흘려보낼 틈을 열어주었다.
여전히 내 주변은 변함없이 돌아간다. 숨이 막히는 날도 여전하다. 하지만 그 답답함의 시간은 예전처럼 오래가지 않는다. 삶 속에서 조그마한 숨 쉴 틈 하나, 흘려보낼 통로 하나가 생겼기 때문이다. 글은 나에게 기관지 확장제 같았다. 막힌 감정의 통를 열어주었고, 스스로에게 숨을 허락했다.
나는 여전히 글로 돈을 벌고 싶다. 하지만 돈보다 먼저, 글은 나를 숨쉬게 했다. 조금씩 감정을 흘려 보내보다 보면, 가는 실개천이 점점 넓어져 바다가 되듯 삶의 호흡도 언젠가 그 너비만큼 깊어질 것이다. 상처가 나더라도, 곪지만 않으면 괜찮다. 그러니 지금은 이대로 호흡하듯 글을 쓸 것이다.
숨이 막히는 지금, 나는 오늘도 글로 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