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가 들려주는 약 에세이
내 삶은 마치 우울증에 걸린 것처럼 무기력했다.
하루 종일 가라앉은 기분, 사라진 흥미, 짓누르는 피로, 잦은 자책감과 무의미한 하루들. 우울증의 대표 증상이라는 것들이, 내 삶의 양식처럼 자리 잡은 듯했다.
내 삶은 겨울잠을 자듯 웅크려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약사 면허증이나 어느 정도의 돈처럼 손에 쥔 것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들은 내 의지가 아닌, 타인, 특히 부모님이 쥐여 준 것이었다. 이전 ‘그럼에도, 용서’라는 글에서도 말했듯, 어렸을 적 한 번 꿈이 꺾인 이후 나는 도무지 하고 싶은 것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미성년이었던 나는 생존권을 움켜쥔 부모님의 조건부 격려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리고 불행히도, 부모님은 나의 행복보다는 그들이 행복할 나의 성공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을 선택했다. 우선순위는 자발성보다는 의무, 의욕보다는 생존이었다. 언젠가 할 수 있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그날을 기약해 왔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졸업이나, 시험 합격, 취업 등 해야 하는 것들 뒤에는 곧바로 다른 비슷한 의무들이 따라붙었다.
‘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로 포장된 채 원치 않는 방향성으로 무차별적으로 반복되는 삶. 어느 순간부터는, 그 지긋지긋한 흐름 속에 내가 있었다. 나는 내 삶을 행복이라는 단어가 희미해질 만큼 오래 방치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다시 무기력 속으로 빠져들던 그때, 나는 우울한 내 삶의 치료제를 만났다.
내 경우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거창한 무언가를 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행복은 감정이기에, 누군가가 대신 채워줄 수 없는 것, 즉 스스로 느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다만, 남편은 세상을 바라볼 때 늘 좋은 면을 먼저 보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꾸준히 좋아해 주었다.
내가 겪는 어려움을 알고 난 이후에도, 그는 어떤 충고나 다그침 없이 그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일상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혹은 지나친 줄도 몰랐던 부스러기 같은 행복들을 하나씩 모아 상기시켜 주었다. 그 대상은 내가 마신 물 한 잔, 오늘의 날씨, 날 서운하게 한 친구 등 어떤 것이든 상관없었다.
처음에는 이깟 게 무슨 행복이냐고 투정했다.
남의 삶은 행복으로 충만해 보이는데, 내 일상은 텅 비어 있는 듯 느껴졌으니까. 그저 부러운 마음에, 내게는 아무것도 없다고 스스로를 자책햇다.
하지만 1년, 2년이 시간이 흐르면서 남편이 모아준 행복은 조금씩, 그러나 착실히 차올랐다. 행복의 농도는 짙어졌고, 더 많은 행복을 추구하던 나는 어느 순간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나는 ‘나를 표현하는 것’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때 나는 나답게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을 되찾았다.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채울 수 있는지 알게 되자 나는 스스로 나만의 행복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남편이 해온 일련의 과정은 실제 우울증 치료제의 작용 방식과 매우 닮아 있었다. 우울증약은 없는 행복을 갑자기 만들어주는 약이 아니다. 우리 뇌에 본래 존재하던 긍정의 감정을 조금 더 오래 머물게 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우울증약에는 계열만 해도 7가지나 되지만, 전략을 대부분 비슷하다. 긍정적 기분을 담당하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등의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조금 더 오래 머물게 한다.
가장 널리 쓰이는 약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다.
기차처럼 연결된 뇌 신경세포에서 분비된 세로토닌은 안정감과 평온함, 마음의 균형 같은 감정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역할을 마치면 다시 세포 속으로 흡수되어, 금세 사라져 버린다. 마치 서랍에 넣은 물건처럼, 제 기능을 하지 않고 잠들어 있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SSRI는 이 행복을 느끼게하는 세로토닌이 깊숙한 곳으로 수납되는 과정을 조금 뒤로 미뤄준다. 그 머무름이 반복되면, 처음에는 뇌가 방어기제를 발동하지만, 서서히 긴장을 풀고 그 농도에 맞추어 더 많은 세로토닌을 안정적으로 방출하게 된다.
이 변화는 보통 2~3주의 시간이 필요하다. 느리지만 확실한 변화다. 그리고 이 시기가 지나면 자전거가 굴러가기 시작하듯, 뇌는 이 내면의 회로를 다시 설계해 나간다.
이렇듯 나의 경우는 남편이 옅어져버린 내 행복들을 조금 더 내 곁에 머무르게 해주었다. 행복의 농도가 짙어질 수록 처음에는 내 것이 아닌 듯한 낯선 감정이 들어 거부 했지만, 천천히 내 삶 안에서도 행복의 회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건 결국, 내가 그 감정을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소한 일상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를 표현하며, 작은 순간들로 행복을 채워가는 것. 그것이 내가 오랜 무기력 끝에 찾아낸 나만의 회복 방식이었다.
변화의 시작은 어렵고, 단번에 일어나지도 않는다. 나의 삶은 겨울잠 자던 꽃과 같았다. 꽃은 하루치의 햇살로는 피어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삶에 햇살을 들이는 일뿐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무언가 대단한 것들을 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
대신, 내 일상 속에서 지나쳐버릴 뻔한 행복을 찾아보며, 하나씩 모아보자. 그 조각들이 쌓일수록 삶은 온기가 돌고 언젠가 다시, 내 안의 꽃도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꽃은, 남이 쥐여준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피워낸 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