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핸들을 남에게 맡기지 않겠다

상처받은 주인공들을 위하여

by 판타

나는 달리는 차에 혼자 남겨져 있었다.

삶에 지친 부모는 내가 운전을 할 줄 모른다는 사실마저 잊었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함 없이 키웠으나

친구들과 감정을 교류하는 법을 배우지 않아 학교에서도 항상 혼자였고,

상처받았을 때 스스로 해소하지 못하고 내 안 깊숙이 쌓아두기만 했다.


또한, 그들은 외로움과 두려움을 그저 견디라고 할 뿐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친구들과 다투고 속상해하는 나에게 또 질질 짠다며 핀잔을 내뱉었다.

그들에게 내 눈물은 신경 쓰기 귀찮은 존재였고, 자신의 자식이 약하다는 증거였다.

나는 그렇게 슬플 때 조용히 숨죽이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속력이 줄지 않는 차 안에서 홀로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일찍 커야 했다.

생존을 위해 핸들을 움켜잡고, 주변을 돌아볼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하지만 혼자 터득한 운전 솜씨는 충분치가 않아서,

나는 여기저기 들이박고 상처를 입어갔다.

어느새 내 반짝이던 새 차는 볼품이 없어졌다.

빼곡해진 사고 이력만큼 부모를 향한 원망이 쌓여갔다.


사회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부서지고 구겨진 차를 폐차하라고 했다.

웃는 근육은 이미 굳어 즐거운 일에도 어색한 표정을 지었고,

낮아진 자존감에 늘 타인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부모가 핸들을 잡아주었거나, 적어도 차 안에 함께 있어 주었더라면 이만큼 망가지지는 않았을 텐데.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선명히 보이는 기스와 너덜거리는 범퍼는 내 속을 뒤집어 놓는다.

희망으로 시작되어야 할 아침이 원망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원망은 그들이 떠난 빈자리로 들어온 사람에게 향한다.

쫓겨나듯 내 삶에서 내려버리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부모를 향한 화가 치민다.


시간이 흐르고 성인이 되고 나는 어느새 그들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그들이 탄 차를 봤을 때, 너덜거리는 차가 부모가 줄 수 있는 최선이었음을 알았다.

동병상련을 느끼며 그간의 힘듦을 토로하였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 대신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돌아왔다.

지난날 겪어왔던 고통은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했던 것인가.

그러기에는 나는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았다.


사과하라.

아무리 사정이 그랬다 해도 결국 선택은 당신이 한 것이다.

상황이 아니라 당신의 선택을 사과하란 말이다.

위험천만하게 질주하는 차 안에 나를 던져두었으면서

나를 그 무서움과 외로움에 살게 했던 그 선택에 대한 용서를 빌어라.


하지만 어린 시절에 이어 성인이 된 지금도, 난 그들에게 다시 한번 거절당했다.

자신들의 상처 입은 곳조차 수리할 여유가 없던 그들은 내 아픔을 차마 돌아보지 못했다.

‘미안하다.’

그 딱 한 마디면 되었으나, 그들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리 땐 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다들 그렇게 살았다.’라는 말은

덮어두었던 내 상처를 들춰내 후벼팠다.


잠시나마 화기애애했던 순간은 다시 원망으로 메워졌다.

사고는 누구에게나 날 수 있다.

하지만, 고치려는 마음조차 없다는 건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그들의 무책임함에 화가 났다.


어안이 벙벙했다.

기름도 없고, 핸들마저 고장 나 방향성을 상실한 채 겨우 과거를 빠져나온 나에게

여기까지라도 온 것조차 자기 덕이라 말했다.

허탈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들은 끝내 사과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내 원망은 그들에게 불편한 공격이었고, 나는 또다시 혼자 남겨졌다.

내가 그렇게 다시 홀로 남겨져 녹이 슬어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알 수 없었다.

내게 다시 달릴 힘이 남아있을까.

멈춰 선 김에 나는 내 손으로 직접 내 차를 수리하기로 했다.

누구도 이것이 중고차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어떤 수리기사보다 열심히 잔기스를 없애고, 구겨진 외형을 펴기 시작했다.

부모와 최대한 멀리 떨어져, 좋은 것만 듣고 보며 수리 기록표를 작성하듯 글을 썼다.


하나하나의 흔적들은 상처임과 동시에 치열하게 살아온 내 삶의 흔적들이었다.

흔적을 모두 지워버리는 것은 나를 전부 부정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데 매달리는 것이 과연 나를 위한 길인가.


어느덧 난 조금씩 다시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부모 없이도 달릴 수 있었다.

핸들은 남들은 엄두도 못 낼 만큼 고장 나 있었으나,

나는 나름의 요령으로 잘 움직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를 잘 모르는 남에게 핸들을 맡기지 않기로 했다.

특히, 상처가 곪아 터진 그들에게는 안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용서했다.

그들이 사과 한마디 꺼내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들을 용서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을 이해한 것이 아니었다.

원망은 그 자체로 나를 녹슬게 하므로, 내 손으로 긁어낸 것뿐이었다.


더 꽉 핸들을 움켜쥐었다.

그간의 수리로 조금 더 나아졌으니, 앞으로는 제대로 달릴 일만 남았다.

내 안의 상처 입은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도로 위는 나만 잘 달리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남들과 속도를 맞춰 달리기에는, 나는 여전히 느렸고 비틀거렸다.

사방에서 차들이 클락션을 울려댔다.

하지만 더는 다른 차들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때, 반대편 차선 위에 올라탄 결함 많은 내 부모의 차가 보였다.

그리고 삽시간에 내 부모의 차를 덮칠 기세로 달려오는 덤프트럭이 보였다.

고민했다.

이대로 그들을 지나쳐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흐름을 거스르고 그들을 살릴 것인가.


그들이 나를 버리는 선택을 했다 해서,

복수심에 그들과 같은 수준의 선택을 할 필요는 없었다.

고민하는 순간에, 이미 답은 정해졌다.

더는 내 자신을 원망하게 둘 수는 없었다.

내가 나에게 입힌 상처는 더 확실하고, 깊을 것이었다.


나는 직접 핸들을 틀었다.

가드레일을 들이박고, 중앙선을 침범했다.

부모를 위기로 몰아가는 덤프트럭을 막아서는 그 짧은 순간,

떠오른 생각이 원망이 아니라 ‘고생했다’는 위로였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위해, 원망에 마침표를 찍었을 때,

덤프트럭은 나를 덮쳤다.

이대로 박살이 나나 싶었으나, 단 한 번도 작동하지 않았던 에어백이 터졌다.

수많은 충돌에도 끝내 터지지 않았던 기능이 이번엔 나를 지켜냈다.

그것은 분명, 내 안에서 자라난 힘이었다.

아무도 장착해주지 않았으나, 나는 내 힘으로 스스로 만들어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지켜냈다.

그들에게 손 내미느라, 나는 다시 부서지고 너덜거렸다.

비록 다시 부서졌지만, 스스로를 지켜낸 나는 마침내 그들을 지나쳤다.

그렇게 진짜 나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제 내가 향하는 방향은 원망이 아닌, 희망이었다.


/제 작품의 주인공을 이해하기 위하여 쓴 글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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