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다'와 '괜찮겠어?' 사이

by 환희

가장 최근에 '영감을 받았다'라고 할만한 것을 접한 게 언제였더라. 재작년에 파리 팔레 드 도쿄에서 봤던 Camille Henrot의 전시가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한다. 일상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어렴풋이 느끼긴 하지만 나조차 그 영감을 특정 작품, 특정 인물 등 예술 안에서만 국한 지어 생각해왔던 것 같다.

결국 나를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영감의 대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의 변화를 갖게 해 준 사람이 있었다. 어떤 한 사람을 통해 그를 위해서 혹은 그가 소개해준 누군가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하게 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구분 지음을 넘어서서 나 자신을 가지고 애당초 있지도 않은, 내가 정해 놓은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 몇 번 반복이 되면서 그분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게 되었다. 대여섯 줄 정도를 쓸 수 있는 작은 편지지였는데 '가장 영감을 주는 사람이 당신이에요'라는 문장을 적고 있었다. 적으면서 과연 그랬지, 하면서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알라딘 어플에서 일간 이슬아 수필집 알람이 떠 클릭해 보았다. 미리보기로 초반의 2-3페이지를 읽고선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고 행동에까지 옮기게 되었다. 돈이 정말 없고 집 앞 도서관에 독립출판물까지 대여가 가능해서 정말 웬만해서는 책을 사지 않는데, 이렇게 이슬아의 두 번째 책이자 그녀의 모든 책을 사게 되었다.


최근 내가 산 일련의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작가가 쓴 에세이들의 공통점은 무척 솔직하다는 것. 어쭙잖은 위로도 안 하고 절대 다른 책으로 대체될 수 없는 글들이 담긴 책이었다. 실은 나도 아니 모두가 이런 나만의 이야기, 남들에게 할 수 없는 이야기 아마도 해서는 안 될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을 거다.

작년 여름, 광화문 교보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면서였던가 잠깐 책들 사이를 거닐면서 이 책 저 책 펼쳐보다가 <오늘 너무 슬픔>이라는 멜리사 브로더의 에세이를 펼쳐보게 되었는데 그 책이 19금 외서에 꽁꽁 싸여 있질 않고 버젓이 이렇게 에세이 가판대 위에 그것도 단독으로 몇 줄이나 놓여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에 꽤 충격을 받았었다. 한국사회가 이렇게나 진보적이 된 건가 하는 식의 신선한 충격. 그리고 그 책을 주문해서 읽고 호기롭게 원서까지 주문했는데 몇 페이지 못 읽고 꽂아 둔 상태이다.


이제는 더 이상 책이 예뻐서, 내용이 좋아서의 이유만으로 책을 사지 않는다. 소장을 하려면 그 책만의 그만한 가치와 분명한 이유가 있을 때에만 산다. 쉽게 말해 예전보다 훨씬 강력한 동기부여와 훨씬 강력한 끌림이 필요해졌다는 거다.


사실 그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을 내세워 가감 없이 그들을 드러냈고 아무리 그들이 인터넷의 불특정 대다수를 대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들 그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거다. 더불어 그저 블로그 글, 일기 형태에서 그치지 않고 출판되어 여러 사람이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데에는 웬만한 자기 확신이 없었으면 이런 소재의 글들을 쓰기조차 쉽지 않았을 거다. 이런 데서 오는 원초적인 쾌감과 남의 사생활을 낱낱이 보는 것 같은 관음증에서 오는 안심(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 이 일반 대중들에게 먹힌 경우랄까.


분명 유튜브에서 자신의 연애 경험을 무척 적나라하게 얘기하는 유투버들과는 다르다. 그건 훨씬 자극적이고 덜 비밀스럽다. 그런 것들은 가끔 정말 잘못된 편견을 심어주기도 한다. '프랑스인의 연애 스타일'에서 '세 번째 만나면 당연히 땡땡해야지' 라던가 하는 말들, 굉장히 뜨악스럽다. 그렇지만 글로서 읽는 사생활은 복합적인 마음을 훨씬 구체적으로 드러내 주고 찌질함도 보여준다. 단언하지 않고 정말 자기 자신으로서의 경험을 공유하는 데에서 그친다.


쓰고 싶은 에피소드들이 참 많은데 다양한 이유로 머뭇거리다 결국은 쓰지 못한다. 정체성의 문제도 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행동들(범법행위는 안 합니다..)을 했고 이런 찌질함과 어리석음을 가지고 있는 걸 보여도 되나. 일종의 두려움일 거다. 작년에 고양시 도서관 프로젝트로 시를 쓸 때도 같이 수업을 들으시는 몇몇 분이 시인 선생님이 첫 시간부터 누누이 말한 '시와 작가를 같은 선상에서 봐선 안됩니다. 시는 문학 안에서 봐주어야 합니다. 그러니 자유롭게들 쓰세요' 했는데도 내게 참지 못하고 '근데 진짜예요 쓴 것들?' 하고 물어봐 무척 난감했었다.


자문이라도 구해봐야 하나. 아니면 일단 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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