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된 나에게
낭뜨에서 석사를 마치고 학사 때부터 봐 온 친구들과 작별을 고했다. 누군가는 낭뜨에 남고 누군가는 원래 살던 도시로 돌아가기도, 혹은 새로운 도시를 향해 뿔뿔이 흩어졌다. 그 후로 매 해 1월이 되면 그 친구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는 게 관례처럼 되었다.
첫마디는 '어디야?'
그럼 프랑스의 어디다, 베를린이다, 등등의 대답을 한다.
두 번째로 묻는 건 '요새 뭐해?' 다. 유리공예 학교를 다니고 있다거나 다큐멘터리 제작을 한다는 등의 대답을 듣는다. 어쩌다 그걸 하게 됐는지, 요즘의 관심사는 뭔지 등의 얘기를 나누다가 공통 주제라도 나오면 반가워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너는?'이라고 묻는 그녀에게 나는 꽃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얘길 전했다.
'네가 꽃을 만지고 있는 걸 상상했는데 진짜 잘 어울려!' 그러면서
나는 종종 네가 뭐가 될지 참 궁금해
라고 했다. 막 서른이 된 나에게.
17년도 1월에 들은 저 한마디는 무척 강렬하게 남아 지금까지도 종종 되새겨본다.
'꿈이 뭐예요?' 와는 좀 다른 맥락인데 보통 '꿈'이라는 건 이루고 싶은 무언가 이거나 되고 싶은 무언가를 지칭한다. 직업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를 나타내기도 하고. 친구가 한 저 말은 어떤 구체적인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살면서 계속 변화하는 너와 나를 전제한 무한한 가능성이 담긴 열린 질문이었다.
우리 모두는 같은 예술대학을 나와서 삶의 연장선 혹은 작업의 연장선으로 각각 유리공예, 꽃, 금속공예, 다큐멘터리 등을 탐구하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의 공통점이 하나 생기는데 유리공예를 배운 친구는 꼭 '유리공예가'가 되려고 그걸 배우는 게 아니다. 물론 유리공예가가 될 수도 있지만 하나의 기술이나 툴로서 필요에 의해 그것을 택했다는 거다. 그러니까 알아주는 유리공예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꽃을 배운건 식물을 본격적으로 탐구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고 최고의 플로리스트가 되고자 하는 목적은 아니었다. 물론 꽃학교를 마치고 국가자격증을 취득한 만큼 생계 수단으로써도 염두에 두었지만 목적을 어디에 두었느냐가 다르다는 거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모래를 파며 뭐든 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넌 뭐가 되고 싶어?'라고 물으며 서로의 꿈을 자랑처럼 얘기했던 게 생각나기도 했고 어른들이 '쟤는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 라며 의뭉스럽게 바라보던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한참 어릴 때의 기억이고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말이고 더군다나 살면서 더는 들을 기회가 없을 줄 알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는데 서른에 저런 말을 듣게 돼서 너무 반가웠다.
한국에 와서 가장 많이 나눈 대화 중
네 나이가 이제 몇이냐?
-제가 올해 서른둘이라네요
어이쿠야 너도 적은 나이 아냐
심지어 내 친구들도 '우리 이제 적은 나이 아냐'를 입에 달고 산다. 어른들이나 주위 선배들이 항상 그렇게 일러준 탓에 세뇌가 된 거겠지. 저 말이 내포하고 있는 진짜 말들은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 거냐/만나는 사람은 있냐/뭘 해서 먹고 살 거냐/밥은 벌어먹고 사냐' 일거다. 그게 아니라 '너도 네 인생 서른이나 살아봤으면 어느 정도는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라면 딱히 할 말이 없지만..
그래서 대꾸했다.
'많은 나이도 아녜요 아직'
*올해 유리공예 학교를 졸업한 친구는 프랑스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려고 시험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1월에 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