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의 생활을 급하게 마무리하고 한국에 온 지 꼭 일 년 째다. 8년간의 생활에서 추린 60kg의 수하물과 검역절차를 마친 이비자를 데리고 온 그날도 오늘처럼 맑았던가. 엄마도 아빠도, 나를 아는 이들은 이유도 묻지 않았고 괜찮냐고도 묻지 않았다. 그렇게 몸을 움직이며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 속하는 모임이 한 두 개씩 늘어나며 친한 친구의 말마따나 '항상 여기에 살았던 사람처럼' 빠르게 또 아무렇지 않은 듯 내 생활을 다시 구축해 나갔다.
지난 주말, 프랑스에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고 왔던 동갑내기 친구가 한국에 왔다. 그 사이 그녀는 파트너와 함께 집을 장만해서 막 이사를 마치고 잠깐 놀러 온 참이었고 또 다른 한국 친구는 결혼을 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자주 그 친구들 집에 왕래를 했었는데 여기에서 치킨을 앞에 두고 그런 얘길 듣고 있자니 이제 내가 속했었던 그 세상이 물리적 거리를 훨씬 넘어서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세상이 되었다고 느끼는 나 자신이 새삼스러웠다. 1차로 간 횟집에서 프랑스에서 본 걸 마지막으로 2년 만에 만난 친구가 물었다.
"그런데 언니는 어쩌다가 한국에 오게 된 거예요?"
-그게 상황이 더 있을 수 없게끔 흘러가더라고. 그래서 굳이 막 버티려고 하지 않고 그 흐름에 따라오게 되었어
라고 했다. 사실이었고 단지 구체적인 상황과 감정을 생략한 요약본이었다. 그 친구는 이 대답에 백 프로 수긍하지는 못하는 눈치였지만 그런대로 넘어갔다. 이번엔 내 동갑내기 친구가 말을 꺼냈다.
"나 너 아는 사람 만났잖아. 어떤 한국 여자를 알게 됐는데, 자기 남편이 어느 날 친구가 너무 힘들다며 만나 달라고 해서 두 시간을 나가서 만나고 왔대. 근데 그게 네 전 남자 친구더라고"
-아...
마침 쌈에 넣은 생마늘이 너무 매워 입 안을 아리길래 눈물이 찔끔 났다.
-마늘 잘못 먹었다. 이 마늘 진짜 맵네 하며 나는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친구는 당황해서
"난 이제 네가 괜찮은 줄 알았지" 당황스러워하며 휴지를 건넸다.
내가 괜찮지 않은 건 그에게 어떤 감정, 미련이 남아서라기보다 이별, 상실 그 자체에 대한 애도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서였다.
이런 막아내지 못하는 울음이 벌써 세 번째이다. 작년 이맘때쯤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내던 내 몸을 기억이라도 하듯, 그 혹은 나와 그의 관계, 그때의 내 마음을 연상시키는 말을 들으면 몸이 자동 반응을 하는 식이다.
영화 <증인>의 마지막 장면에서 변호사가 자폐를 가진 아이에게 새로 옮긴 특수학교는 어떻냐고 묻는다. 아이는
-학교 애들 다 진짜 이상해요. 그런데 괜찮아요. 그 안에 있으면 정상인 척 안 하고 제 모습 그대로 있을 수 있거든요.
라는 대답을 한다. 이어서 그 아이의 엄마에게 '아이 키우지 힘들지 않느냐, 자폐가 없었으면 좋았지 않았겠냐'고 물으니
-그런 생각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자폐 증상이 없으면 우리 지우가 아니잖아요.
라는 식의 얘기를 한다.
최근에 들은 강의에서,
각자가 가진 몸/정신에서 오는 현상들을 일련의 '증상'으로 봤을 때는 그것들을 개선시키려 하고 개개인이 가진 고유한 특성으로도 볼 수 있는 반면 현대에 와선 증상이라고 불렸던 것들을 '장애'라고 바뀌며 없애야 하는 것, 고쳐서 바로 잡아야 하는 것으로 보게 됐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우가 다니는 그 학교 안에서는 그들 모두가 나름의 정상 세계를 이루며 살고 있다. 정상/표준은 무엇을 의미하나. 결국 모든 건 누가, 어떻게, 어떤 자리에서 보고, 이름 붙이느냐에 따라 A를 두고도 A-1이 아닌 B나 C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경계에 선 사람들이 모두 위태로운 사람들일까? 그 또한 특정한 범주를 정해 놓았기에 경계라는 개념이 생기고 모두가 선 안 쪽에 들어와 살아야 행복하고 평화로울 거라고 선 안의 사람들이 멋대로 간주해 버린 건 아닐까. 나는 경계라는 말보다는 사이를 더 선호한다. 서양에서 이십 대를 보내며 공부를 하고 그들의 문화나 일상 속에서 흔히 생각한 서양(인)의 절대적인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내 편견을 무참히 깨 준 건 오히려 그들이었다.
안과 밖이라는 건 언제든 쉽게 전복될 수 있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그 전복을 경험하며 살고 있고 그 두 세계의 사이에 머무르는 사람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