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아이도 '망했다'라고 한다

모든 아이들은 가능성과 재능으로 빛난다

by 환희

프랑스의 자유롭고도 특별한 프레네 교육학에 관한 통역을 맡았던 것이 계기가 되어서, 교습소를 열려다가 이미 잘 되고 있는 집 근처 학원에 궁금해서 전화를 한 통 걸었다가 등의 우연하고도 필연적인 계기로 현재 아이들과 만나 미술 작업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내가 1년 가까이 만나고 있는 아이들은 4세부터 19세까지고 그 아이의 집, 학원, 대안학교, 정신분석센터 등 다양한 경로와 장소를 통해서다.

아이들과 청소년에게 특별한 애정과 관심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지나가는 아이만 봐도 돌아보며 절로 엄마미소를 짓진 않는다는 거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으면 이 일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라면서 보고 겪어온 내 부모와 조부모, 몇몇 선생님들의 애정 어린 섬세함과 적절한 친근함과 거리감, 인내가 지금 내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자연스레 형성한 것 같다. 그들은 심적으로 아주 가까이 있다고 느껴졌고 학창 시절에 내게 너무 버겁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몇 번 그들에게 털어놨었고 그들 중 아무도 내게 섣불리 이렇게 하라며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 대신 한 사람의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에 관한 얘기들을 들려주며 곁에 있어 주었었다. 그들은 감사하게도 진짜 어른들이었다.




프랑스 지방 국립 정신병원에서 처음 아이들을 접했다.

이십 대 중반, 삶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갔었고 내 주변에서 아이를 만날 기회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마주친 아이들은 특수한 상황에서 만나는 특별한 아이들이었다. 자살시도를 하고 나서 다시 집과 학교로 돌아가기 전에 보통 일주일 정도 지내는 아동청소년 정신병원이었다. 정신병원이라곤 하지만 아이들 병동이라 건물 외벽에도 컬러풀한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고 내부도 차가운 느낌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나는 같은 반 친구들과 주어진 50분 동안 각자의 예술작업을 바탕으로 한 예술 아뜰리에를 돌아가면서 진행했다. 이 그룹수업을 담당하고 거의 10년째 진행하고 계신 교수님과 진행되는 방식, 할애하는 시간, 필요한 공간, 준비물에 대한 회의를 하고 아뜰리에 당일에 미리 가서 간호사들에게 간단한 소개를 하면 이 아뜰리에는 의무가 아니었기에 오늘 몇 명의 아이들이 참여할 건지에 대해 말해 주었다. 아뜰리에가 끝난 직후에는 정리를 하고 간호사들과 정신과 의사 혹은 분석가가 모두 참여한 회의를 했다.


처음 겁을 먹은 건 내 쪽이었다. 얼마나 힘들고 연약한 아이들 일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대체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극을 받는 건 아닐는지 두려움도 일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처음엔 낯도 좀 가리고 호기심도 보이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다 이내 작업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니 보통의 아이들도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며 그들에 대한 괜한 걱정과 경계를 풀게 되었다.


이때의 경험이 내 삶에 어떤 환기를 불러일으킨 것은 분명하다. 그 후 나는 대학원 때에도 다른 아동 낮 병원에서 친구 한 명과 팀을 이뤄 예술 아뜰리에를 진행했다. 이 때는 5명으로 이루어진 일곱 살 전 후의 아이들로 이루어진 그룹을 한 학기 동안 쭉 만났었다. 그중 학교에 나가는 아이는 둘 뿐이었다. 모두가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아주 어릴 때부터 약물치료를 받아 온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열두 살인데 어른만 한 몸집을 가진 흑인 여자아이는 기분이 좋으면 간호사 선생님들을 뒤에서 안고 흔들었다. 그럼 간호사 선생님은 그 아이의 흥분을 단호하고도 자연스럽게 가라앉히고 데리고 나가서 잠깐 산책을 하고 왔다. 글을 모르는 그 아이를 위해 우리가 준비해 간 10년 후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 작업에서 글뿐 아니라 그림이나 사진을 꼴라쥬 할 수 있게 며칠 동안 잡지나 신문을 오리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첫날엔 우리 말도 경청하고 대답도 잘하며 무척 얌전한 모습을 보였다. 두 번째 아뜰리에에서부터 조금씩 아이들 특유의 활달한 본색을 드러내더니 머지않아 테이블 아래에서 고집을 부리며 나오지 않는 아이도 생겨났었다. 평소엔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아이가 아뜰리에가 끝나고 비가 오던 날, 엄마를 기다리며 대기실에 있을 때 옆에 앉은 내게 침을 튀기며 자신이 좋아하는 총 쏘는 게임에서 그 종류와 기능들에 대해 말했던 때 속으로 얼마나 놀라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든 아이들은 가능성과 재능으로 빛난다. 나는 이미 개개인의 아이들이 가진, 여러 재료를 쥐어줬을 때 그중 하나를 생각지도 못한 그만의 방식으로 다뤄 창조성을 끌어내는 순간을 여러 번 지켜보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어쩌면 나는 그들의 부모가 아니어서,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어서 또 내가 예술을 하는 사람이어서 내게만 보이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옆에 있는 누군가가 '멋지다' '근사하다'라고 지지해주는 그런 순간들이 쌓여 그 아이들과 신뢰를 쌓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수업을 하다 보면 더러 상스럽거나 폭력적인 어른들의 말을 따라 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 내가 정말 놀랐던 건 조그만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아 망했어요'다. 티브이에서, 주변에서 요새 부쩍 저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생망'이니 뭐니 하는. 그런데 아직 인생을 본격적으로 살아보지도 않은 어린아이가 점토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그림을 그리다 선이 조금 삐져나갔다는 이유로 '망했다'며 그 자리에서 포기해 버리거나 그림을 찢어버리기도 하는 광경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욕을 하는 아이에겐 '교실에선, 선생님 앞에선, 친구에겐 심한 말을 해선 안된다'는 룰을 가르쳐 줄 순 있지만 '선생님 이거 망했어요'라고 하는 아이 앞에서 나는 오히려 무력해졌다.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한결같았다. '잘, 멋지게, 예쁘게 하지 못해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어서'이다. 언젠가 쿠킹 수업에서 한 초등학생 아이에게 달걀을 깨 달라고 했는데 그 아이는 끝내 달걀 껍데기가 들어갈까 봐 무서워서 하지 못했다. 나는 온갖 말로 회유했다. 달걀 껍질 좀 들어가도 괜찮아, 내가 빼줄게, 집에서는 그럴까 봐 못하니까 여기서라도 해 보면 좋잖아 등.


아이들도 물론 그들의 기준과 취향을 가질 수 있지만 이런 식의 완벽에 가까운 절대적인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고 끝끝내 그림을 찢어버리거나 달걀조차 무서워서 깨지 못하는 건 걱정스러웠다. 그 아이들의 머릿속엔 이미 '잘하는 것'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것'의 기준이 절대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전혀 아이답지 못했다. 창작 과정에서 망한 건 없다. 삐져나간 선을 이용해 처음 의도와는 생각지 못한 그림이 그려지면 그거대로 좋다. '그래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한 번 해 봐'라고 지지해주는 어른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걸까.

물감을 거부하는 아이들은 이미 많다. 4살 아이도 '묻어서 안돼요'라고 한다. 손가락 끝에 살짝만 묻어도 바로 내게 손가락을 내밀며 닦아 달란다. 그 뒤의 숨겨진 말은 '엄마한테 혼나요'다. 심지어 종이에서 물감이 삐져나가 책상에 묻자 그 아이는 '이거 어떡해요?' 라며 걱정을 하기도 했다. 미술수업을 하며 부러 물감을 묻히는 것도 아니고 앞치마를 다 입혀서 해도 아이들이라 어쩔 수 없이 묻는 부분에 있어 나와 아이 둘 다 그 때문에 물감을 포기해야 한다니 가혹했다.


내가 아이들과 수업하는 나 자신을 봤을 때 '잘했다' '멋지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그룹 수업 중에 그 아이가 개별적인 특수성으로 그 아이 기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을 때 '잘했다'를 뜻하지 사람을 정말 사람처럼 그려서 혹은 누가 봐도 선과 색을 잘 써서, 옆에 있는 아이에 비해 월등히 잘해서 칭찬하는 뉘앙스와는 다르다.

그러려면 구체적인 칭찬이 중요하다. '와 이걸 이렇게 쓸 생각을 했구나 진짜 멋진 생각이네' 하는 식의.


자리에 앉기도 전에 '싫어요'라고 말할 준비부터 하는 아이가 있다. 이 나이 때의 아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임을 여러 다른 아이들을 만나다 보니 알게 됐지만 내가 준비한 모든 수업에서 저러니 힘이 빠지긴 한다. 그렇게 매번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하던 그 아이에게 약속을 받아내서 '싫어요' 하기 전에 일단 오늘 무슨 작업을 할 건지를 들어보게 하고 그럼 너는 이것까지만 한 번 해봐,라고 협상을 봤다.

아주 오랜만에 그 아이가 한 시간 반 수업 끝에 자신이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완성했다. 결과물도 멋졌고 열심히 작업한 그 아이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 아이가 집에 가기 전에 슬쩍 물었다. '저 이렇게 완성해서 가져간 거 처음 아니에요?' 나는 무슨 소리냐며 너 전엔 종종 이렇게 멋지게 완성해서 집에 가져갔었어! 랐다. 그 날 그 아이의 의기양양한 아이다운 표정을 잊지 못한다.


중학생 아이도 지난 시간에 대충 시간을 때우려 그린 그림을 완성하고 이런 건 가치가 없다며 찢기까지 했는데 이번 시간에는 선생님 저 지난번에 했던 그 입체 그림 다시 해볼게요, 라며 진득하니 앉아 진지하게 작업을 했다. 아주 대단해 보이거나 우와 소리가 날만큼 멋지지 않아도 창작 과정에 있어 어려움과 좌절 끝에 그 아이 기준에서 이쯤이면 됐다고 생각해서 '완성한' 작업은 그 아이에게 자신감과 뿌듯함을 준다.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아이의 것이고 비교되지 않는 기준이다. 이런 순간과 경험이 쌓여 그 아이 삶의 견고한 토대가 되었으면 한다. 내가 초등학생 때 워낙 작고 낯도 많이 가려 반에선 항상 조용한 아이였었는데 글쓰기를 해서 받은 몇 번의 장려상, 어쩌다 한 번 받은 우수상으로도 담임 선생님과 아빠의 무한한 지지와 칭찬을 받았던 기억으로 여전히 글을 쓰는 것처럼.


내가 만난 아이들이 유독 빛나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건가란 생각을 했었다. 그 정도로 내가 운이 좋은건가라고도. 그러다 내가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계속하게 하는 동기에서 그 답을 얻었다.

아이들은 성장했다. 한 주를 건너뛰고 그 다음주에 봤을 때 그 아이가 쓰는 선이며, 하는 말, 행동,

외적으론 얼굴의 생김새와 키도 어딘지 달라 보일만큼 성장해 있었다.

어른인 나는 자주 까먹어도 아이들은 지난번에 내가 무심코 했던 말, 약속, 가르쳐 준 선을 쓰는 방법 등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흠칫할 때가 있다.

성장하는 인간을 옆에서 지켜볼 때면 놀라움과 벅참, 기대감, 뿌듯함 등이 내 마음에 채워지는 것 같다.

그 옆에서 나는 그들이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그들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을 묵묵히 따라가 주기만 하면 된다.

괜스레 호들갑 떨거나 너무 큰 기대는 접어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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