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무가지 <CRACKER> 인터뷰
-우선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한다.
현재 고려대학교 조형예술과를 휴학하고 프랑스 예술 학교 진학을 준비 중이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한예종을 목표로 했는데 떨어져서 지금은 학교에 흥미를 잃은 상태다. 부모님은 그래도 운이 좋았다며 흡족해하시지만 난 아니다. 그래서 차라리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하든지 기회가 주어지면 여러 나라를 돌며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요즘엔 영화나 미디어아트 쪽의 영상 작업에 빠져있다.
-프랑스어는 할 줄 아는가.
배운 지 한 달 정도 됐다. 때마침 같은 대학교 어학당에 다니는 프랑스인을 만나게 되어서 그 친구에게 열심히 배우는 중이다. 처음 접하는 언어라 무척 생소하다.
-부모님은 당신의 계획에 찬성하는 편인가.
물론이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내게 줄곧 말씀하셨다. '사람은 각자의 인생이 있고 자기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라고 말이다. 그래서 외동이지만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것에 대해 겁을 먹거나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진로를 빨리 결정했다.
그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패션과 순수예술 둘을 놓고 엄청 고민했는데 결과적으로 조형예술과로 오게 되었다. 지금도 계속 고민 중이다. 내가 나를 꾸미는 용도로 옷을 좋아하는 것인가 아니면 거기서 그치지 않고 뭔가를 창조하길 바라는 것인가. 어쨌든 옷을 좋아하는 건 확실하다. 아마도 몇 년 동안은 이 문제가 인생의 가장 큰 화두가 될 것 같다.
-쇼핑은 주로 어디서, 얼마나 자주 하는가.
한 달에 한 두 개 사는 정도다. 정말 마음에 드는 것 아니면 물건을 잘 안 사는 편이다. 주로 외국 여행 갔을 때 들르는 빈티지 샵이나 플리마켓 또는 걷다 마주치는 샵 등지에서 쇼핑을 한다. 미국 빈티지 샵이나 플리마켓은 많이 돌아다니면 돌아다닐수록 예쁜 걸 찾을 확률이 높더라. 여행 중에 주말이 되면 무조건 유명한 마켓에 들러 구경을 한다. 굳이 옷을 사지 않아도 그림이나 책 등을 보러 반드시 들른다. 국내 백화점에 안 가본지는 한참 됐다. 올해 들어 계획을 하나 세웠는데, '새것을 사지 말고, 미용실을 가지 말고, 브랜드 커피를 마시지 말자'는 일종의 작은 프로젝트다. 미용실은 딱 한 번 갔고 다른 건 비교적 잘 지키고 있다.
-프로젝트까지 만들어 쇼핑을 자제하는 이유는.
어떤 책을 보다가 요즘 프랑스 젊은이들이 기성세대들에게 반감을 품고, 자기만의 생활 스타일을 구축하려는 경향이 짙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여행 중에 외국인 친구에게도 직접 들은 이야기이고 말이다. 레스토랑도 일 년에 두세 번만 가고, 중고 가구를 사용하고, 옷도 돌려 입는 것이 흐름이라고 한다. 패션 강국이라는 프랑스에서 이런 풍조가 유행이라니 조금 의아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꽤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시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외국 여행을 자주 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 왔다. 그 후로 유럽, 미국 이렇게 총 세 군데 가봤다. 일본에 갈 때는 아버지께서 선물로 비행기 티켓을 사주셨는데 두 번째 여행부터는 아르바이트로 경비를 모아 직접 비행기 티켓을 구입했다. 집 앞에 있는 시립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며 돈을 모았다. 여행을 하다 보니 점점 노하우가 생겨서 얼마 전 미국에 갔을 때는 카우치 서핑으로 숙박비는 거의 지출하지 않았다.
-국내 구제시장이 외국의 빈티지 샵이나 플리마켓과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선 구제시장처럼 옷이 너무 한꺼번에 쌓여있는 걸 보면 보는 순간 지치고, 너무 많다는 생각만 든다. 옷을 덜 소중히 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비단 옷을 전시하는 방법만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옷을 판매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조금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외국 빈티지 마켓에 가면 물건을 파는 할머니께서 모자 하나하나의 제품 연도까지 알고 계신다. 물건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꿈에 대해 얘기해달라.
일종의 미션인데 '예술가로서 지구를 지키는 것'이다. 외국 여행을 하며 지구가 지금 굉장히 안 좋은 상황이란 걸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니까 이곳의 환경을 지키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뱅크시처럼 인류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2019년 9월, 의식의 흐름에 따른 내 맘대로 문답
-어쩌다 십 년 전 인터뷰를 찾아보게 되었나.
아침 일찍 일어나 티비를 틀었더니 마침 <일로 만난 사이> 재방을 하고 있어 찐감자 두 개를 가지고 그 앞에 앉아 끝까지 보게 되었다. 차승원이 게스트로 나와 "이제 좀 나다워졌어"라는 말을 했고 그것을 옆에 있던 블랙보드에 적어 넣은 게 발단이 되었다. 저 말에 나 스스로의 나다움은 뭘까란 생각이 들었고 십 년이 흐른 후 변화된 게 있다면 그 또한 자연스러운 지금의 나다움이 아닐까 하는 반박도 들었다.
크래커는 이 당시 옷에 관심이 있던 내 주변 사람들에겐 꽤 이슈가 됐던 무가지 스트릿 패션 잡지인데 운 좋게 2009년 6월 <당신의 옷장을 공격> 한다는 특집으로 모든 옷을 방에 꺼내 고이고이 접어서 선보이고 착장컷도 찍고 짧은 인터뷰도 진행해 4페이지에 걸쳐 스물둘의 나와 내 세계를 이렇게 지면으로 남겨 기념으로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에 발간된 <크래커 100%> 에도 내가 있었다. 저 때 내가 좋아해 마지않았던 옷들의 반은 프랑스에 가져갔는데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행방불명된 것도 많고 버리기도 했다. 한국 집에 돌아와서 옷장 문을 열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조금 특이하다 싶은 옷은 어떻게 된 게 단 한 벌도 남아있지 않다.
저 때 얼마나 옷을 좋아하고 꽂혀 있었으면 저런 데도 나왔나 싶다.
-지금 꽂힌 건 뭔가.
독립출판. 아뜰리에 프로그램들. 공간을 내는 것. 라깡 정신분석 공부.. 등 여전히 다양한 것들에 관심을 두고 살고 있다. 가장 '필요하다'라고 생각하는 건 체력 즉 건강이다.(만 나이 서른하나)
-정확히 십 년이 지난 후의 나는.
8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작년 봄에 한국에 와서 가족과 살고 있고 그 사이에 프랑스에서 데려온 고양이를 묻었고 여름, 가을이라는 두 마리의 새 식구를 들였다. 4,5세 아이들부터 고등학생과의 미술 수업을 대안학교, 미술학원, 개인 집이라는 다양한 공간에서 하고 있고 그것으로 대부분의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꽃 일도 가끔씩 한다.
-2020년 10월, 이어서
올해에도 운 좋게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지면이 아닌 유튜브에 올라간 동영상이다. 이러한 매체의 변화로 십 년이란 세월이 흐른 게 체감되었다. 이 6분짜리 편집된 영상을 위해 나는 총 두 번의 사전 미팅과 2시간에 걸친 본 인터뷰까지 정말 많은 말을 쏟아냈었다. ‘어쩌다 프랑스에 가시게 된 거예요?’라는 첫 질문부터 시작해서 정확히 10년 전의 나부터 다시 꺼내 보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 인터뷰 중
‘요즘 같은 시대에, 나 자신을 믿고 뭔가를 꾸준하게 계속해 나간다는 게 무척 어려워졌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그 사람이 하고자 하는 거.. 옳다고 생각하는 걸 계속해 나가게
그 주위 사람들이 소수여도 그 사람이 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지지를 해주면
그 사람은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거거든요.’
라는 말을 했었는데 최근에 정말 저 말을 실감하며 살고 있다. 가까운 사람들이 내가 만들어내는 것들을, 내가 하는 일들을 지지해 주는 게 얼마나 계속해 나가는 데 큰 힘이 되는지. 내가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미션을 줘서 나를 조금씩 성장시키고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가며 써서 계속 일하게 한다. 다른 사람한테라면 돈이나 대가를 받고서 해 줄 일들, 말들을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준다. ‘왜 이렇게까지 해 주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내가 당장 그에 보답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더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그들은 얄짤 없다는 듯 ‘더 가열차게 하란 말이야!!!’ 하고 만다. 내 옆에 친구라는 이름으로 있어주는 사람들이다.
언젠가 본 김영하의 인터뷰에서 작가가 되기 전, 젊은 시절부터 쓴 글을 가장 먼저 전화해서 읽어주고 의견을 묻는 친구 몇 명이 있다고 했는데 그렇게 긴 시간 전화를 붙들고 들어주는 소수의 사람들 덕에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재능과 운은 일시적으로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계속해 나가는 힘이라는 걸. 그리고 그걸 지지해주는 소수의 고마운 사람들 덕에 내가 나다울 수 있다.
2019년의 나
2020년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