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작품을 보관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by 환희

시 쓰는 영찬 씨의 다섯 번째 질문

사진으로 작품을 보관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꽃은 시작과 끝이 있는 생물이에요. 피고 지죠. 꽃에는 항상 두 가지 행위가 수반돼요. 보는 것(감상하는 것)과 지고 난 꽃을 치우는 것. 사진을 찍는 건 보는 순간만을 영원히 잡아둔 거예요. 꽃이 진다는 사실을 외면하려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사람들이 청춘을 혹은 아름다운 사람을 꽃에 비유하잖아요 그때 꽃은 막 피어나는 꽃, 활짝 핀 꽃만을 얘기하죠.


사람들의 주문을 받아 만든 꽃을 보내기 전 사진을 찍어요. 그건 기록과 증명으로서의 사진이에요. 제가 정말 기다리는 건 그 꽃을 받은 사람들의 메시지예요. 때로는 신부의 손에 들려 찍힌 사진, 공간에 가장 돋보이게 놓인 꽃 사진들을 보내주세요. 제 손을 떠나 비로소 주인에게 갔을 때 의미가 완결이 되는 거니까요. 꽃 수업을 마치고 각자가 꽂은 꽃을 방 창가, 사무실 책상 위 등에 놓은 사진들도 마찬가지죠.


꽃은 분명 일시적인 환기의 효과가 있어요. 한 번도 꽃이 놓이질 않았던 공간에 꽃이 놓이는 순간 사람들은 정말 몰랐다는 듯이 '와 꽃이 있으니 다르긴 다르네'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해요. 익숙했던 공간도 다르게 보여요. 좀 더 화사하게요.


저는 꽃집을 운영해서 여러 주문을 받아서 하는 게 아니라 작업실에서 개인 작업을 하거나 드문드문 들어오는 소수의 주문 작업만 하니까 거의 한 번도 같은 걸 만들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꽃 작업 후 사진에 신경을 써서 찍을 수밖에요. 주위에서 꽃 사진도 찍어 주고, 인스타 계정을 만들라는 조언 등도 해 줘서 얼마 전에 꽃 계정을 따로 만들었어요. 이름 짓는 걸 어려워해서 고민을 계속하다가 왜인지 마티니가 떠오르더라고요. 제가 성년이 되자마자 가장 즐겨 마신 술이거든요. 이름도 예쁘고 잔 생김새도 우아하고 달달한 술을 짭조름한 올리브 두 세알과 곁들여 먹는 것도 재밌고, 외국 영화 같은 데서 나오는 걸 봤을 수도 있고 여하튼 유학 가기 전에 친구들이랑 바에 가면 마티니를 시켰었어요. 한 잔만요.


제가 꽃을 즐기면서 작업하는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뭔가 가능성이 많은 재료인 것 같은데 아직 능숙하게 다루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항상 상업적으로 평가와 연결되서인지 어떤 불편함 같은 게 계속 있거든요. 자유롭게 내 작업, 시간제한 없이 할 때는 그래도 부담 없이 빠져 들어서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 '플라워 마티니'라는 이름은 제 무의식 안에서 '아 나도 꽃 좀 마냥 즐기고 싶다'라는 소망에서 나온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또 제 꽃을 보는 사람들도 가볍고 우아한 한 잔의 술처럼 즐겨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지난 전시에서 안시리움이라는 꽃을 자르고 해체해서 진공포장시키고 그 조각들을 다시 이어 붙인 <Bouquet> 꽃다발이라는 사진 작업을 전시했었거든요. 결국 진공포장도 일주일을 넘기니 그 안에서 꽃이 변색되고 나중엔 곰팡이도 피더라고요. 사진은 진공포장 직후에 찍은 것이고 비닐이 투명이라 보일 듯 말 듯 해서 다들 그냥 예쁜 꽃 사진으로 보기도 하더라고요. 모든 꽃 작업이 입체고, 살아 있는 것에서 시작해서 결국 평면의 사진으로만 남는다는 건 분명 같은 작업 이어도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감상할 수 없게 된다는 걸 의미해요. 꽃을 말리는 행위도 그래요. 생기와 고유의 색과 형태를 잃어버리면서 꽃의 순간은 끝끝내 잡히지 않아요.


가끔 생각해요. 그때 그 작업, 다시 할 수 있을까. 혹은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Bouquet>, 2020, 디지털 프린트 (c) Fanny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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