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은 메로나를 먹는다

by 환희

저기 허리를 굽힌 여인이 유모차를 끌고 간다

이전에는 작은 아이가 타 있었고

지금은 작고 하얀 개가 타 있다


혼자 사는 여인의 집 냉동실에는

언제나 메로나가 채워져 있다

교정을 한 나랑 틀니를 낀 그녀가 나란히 앉아

메로나를 빨아먹는다


그녀가 정신이 아직 온전할 때에

자식과 손자들에게 백만원 씩

나누어 준 이름 목록을

세고 또 센다

빠진 자식은 없는지


내가 어릴 땐 그녀가 항상 내 꿈을

달래 주었는데

그녀의 죽은 남편이 자꾸 나와 호통을 치는 꿈을

나는 어떻게 달랠지 몰라한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식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알지 못한다

경사도 죽음도

그렇게 스러져가는 어른이 되어간다


이백만 원짜리 보청기를 낀

그녀에게 먼저 전화가 걸려온다

며칠째 아무에게도 전화가 오지 않아

전화가 잘 걸리는지 시험을 해보는 거라며

행복하라며 전화를 끊는다


언젠가 그녀가 내게 물었었다

거기서 외롭지 않느냐고

다른 이들 모두가 행복을 물을 때였다

그때 그녀도 혼자였다



오히려 프랑스에 살았을 때, 국제전화 시절부터 해서 더 자주 할머니께 전화를 걸고 안부를 여쭸던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할머니는 걷기 시작한 나를 데리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어디든 데리고 갔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의 눈으로 세상을 알아갔다.

언젠가부터 할머니의 집은 알 수 없는 건강기기들로 채워졌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우리 할머니가 왜 그런

침 발린 소리를 하는 사람들에 속아 효력도 알 수 없는 비싼 물건들을 사 오는지 우리는 이해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자주 큰 소리를 냈다.

그녀는 내가 귀국한 직후에도 통장에 이 정도 돈도 없으면 사람이 위축된다며 굳이 내게 돈을 쥐어주었었다.

그 돈을 받으면서 나는 엉엉 울었다. 나는 아직도 그녀에게 받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여름, 할머니 집에 가니 영락없이 메로나를 꺼내 주셨다. 서로 이가 불편해 메로나를 씹지도 못하고 빨아먹으며 '니나 내나' 하며 웃었다.

어느 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어떤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유모차를 끌고 오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곳에 타고 있는 건 아이가 아니라 흰 개였다. 이제는 그 굽은 허리로 개까지 끌어야 하는 뒷모습이 내 눈엔 그렇게 처량해 보였다. 앉아 있는 개가 너무 편안해 보여서 더 그래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비슷한 길 위에서 노부부가 사이좋게 메로나를 드시며 걸어오는 걸 보았다.

종종 아이들이나 젊은 사람들이 아이스크림 냉동고에서 메로나를 꺼내는 걸 본다. 그럼 속으로 "너도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자랐구나", 하고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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