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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Jul 16. 2020

서른 넘어 첫 경험

feat. 운전면허와 새 친구 사귀기

삼십여 년을 조수석에만 앉다가 고작 한 뼘 정도 왼쪽으로 이동했을 뿐인데 나는 '타는 사람'에서 '모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잘 아는 가까운 사람들은 '못 할 텐데.. 호들갑 떨면 운전 못 해 너 잘 놀라잖아' 랐고 프랑스인 친구는 '운전대를 잡는다는 거 비단 내 목숨뿐 아니라 타인의 목숨까지도 내 손에 달려 있게 된 아주 책임이 막중한 일인 거 알지? 동승자 말고 차 밖에 있는 사람까지 포함해서 말이야' 라며 자기는 이런저런 이유로 운전을 안 하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는 운전면허 학원에서 최소 60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내가 이미 장내시험을 보고 도로주행만을 6시간 남겨놨다고 하니 무척 놀랐다. 자기는 프랑스에서 면허 시험을 통과하고도 내가 과연 운전을 해도 되는 걸까 반신반의했단다.


주변 사람들이 지금 여유 있을 때 일단 면허라도 따 놓으랬고 나는 번번이 '차도 없는데..' 라며 주저했었다.

어른들은 '일단 면허가 있으면 차 탈 일이 생겨'라는 이상한 주문 같은 말을 하셨다.


코로나로 몇 달간 수입이 불안정해 거의 100만 원에 이르는 운전면허학원은 시간이 남아돌았어도 엄두를 못 냈었는데 재난지원금 나온 거에 돈을 좀 더 보태 이 기회에 등록했다. 1교시인 오전 7시 50분을 수강하고 있는데  사람이 정말 많다. 대부분 90년대생 대학생들이었다.


운전대는 이렇게 잡는 거예요 하고 처음 알려 준 심 선생님은 내게 칭찬일색이었다. 이야 감이 너무 좋다, 정말 잘하는 거다, 시험은 문제없다. 나도 어른들이나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이런 작은 칭찬들, 잘하고 있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니 괜찮다고 하는 말들이 실제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작용을 하는 걸 알고 있어 '이 분 잘하네' 속으로 미소 지었다. 그런데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100점과 실격을 왔다 갔다 하는 들쑥날쑥한 주차 실력에 시험 대기를 하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내게 심 선생님이 다가오셔서 '진짜 괜찮겠어요?' 하고 물으셔서 바로 '아니요 안 되겠어요' 하고 얼른 사무실로 가서 2시간을 연장했다. 1시간 전만 해도 오늘 당연하게 붙을 걸 예상하고 토, 일에 거쳐 도로주행을 받고 월요일에 도로주행 시험 예약하고 7월 말 제주에서 렌터카를 빌려 볼 그야말로 정신 나간 생각을 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전 7시 50분에 학원에 가 2시간 추가 연수를 마치고 심 선생님의 '괜찮겠어요?'를 한 번 더 듣고 '네 이번엔 할 수 있어요'로 답하고 결연한 태도로 시험에 임하고.. 마지막 커브까지 돌고 저 앞에서 기다리고 계신 선생님을 향해 환히 웃어 보이며 '100점이요! 100점! 감사합니다 선생님!' 했다.


장내주행을 할 때는 시속도 10km였고 카트라이더처럼'오 페달 밟으니까 차가 가네' 하며 재미있고 신기하기만 했는데 도로주행은 그야말로 실전이고 안전을 담보로 하니 얼마나 살 떨릴까 싶은데 오히려 장내보다 더 쉽고 재미있을 거라고 하시니.. 두고 볼 일이다.


몇 년 전 제주에서 오랜 친구들인 김과 최를 만나 당시 운전 연수를 마친 최가 렌터카 운전대를 잡았었다.

어둑해지고 있었고 처음 숙소를 찾아가는 길이었는데 보조석에 앉은 노련한 드라이버인 김이 최에게 '다음에 커브 돌 때 사이드미러 더 조심히 봐' 했더니 최가 '네가 봐야지 나 지금 백미러도 간신히 보고 있어'라는 말을 듣자마자 갓길에 차를 세우고 김이 운전대를 건네받았다. 최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해서 안 물어봤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운전한 지 2년이 돼가는 최의 차를 지난달 김네 신혼집에 다녀오며 얻어 탔는데 거침없고 스무스한 운전 실력에 새삼 놀랐다.


서른 넘어 하게 된 첫 경험이 또 있다.


핸드폰 어플에서 알게 돼 간단하게 통성명만 하고 커피나 한 잔 하자며 처음 만난 게 올해 초였는데 이젠 끌로에가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갈 때가 됐다. 작년 가을에 처음 한국에 온 끌로에가 우리의 첫 만남 장소를 정했고 나도 가보고 싶던 공연장이자 카페였어서 내심 반가웠다. 서로 볼인사를 하고 와인의 나라에서 온 끌로에가 '난 와인을 좋아하지 않아 이상하지?' 하며 시킨 홍차 한 잔과 내가 시킨 와인 한 잔을 앞에 두고 우린 여러 세계를 넘나 들었다. 예술계라는 같은 분야에 있지만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달랐고 그 애가 지난달에 다녀온 곳은 내가 몇 해 전 다녀온 곳이었고 우린 같은 걸 다른 시간대에 봤다는 이유로 그것은 아름다워지기도 뻔해지기도 하며 여러 지점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다. 우리의 주제는 적당한 깊이로 여러 장르를 넘나 들었고 이런 익숙한 프랑스식 대화에 나는 거의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제2의 고향인 프랑스에서 온 고향 친구라도 만난 듯 그렇게 낯선 이에게 내 생각들을 우회하지 않고 꺼내 놓았다. 지하 공연장 여가수의 감미로운 목소리 사이로 1층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문장이 뒤섞이고 배경음처럼 들리는 라이브 공연까지 보고 나와 혜어졌다. 얼마나 좋았으면 이 날 집에 돌아와서 '나 너를 알게 돼서 너무 좋아. 우리가 나눈 대화도 정말 재밌었어. 고마워'라고 메시지를 보냈을 정도다. 단순히 내가 프랑스에 살았고 그녀가 프랑스인이고를 넘어서서 어릴 때 같은 학급에서, 친한 여자애들 중에서도 정말 정말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찾아낸 것 같이 기뻤다. 그런데 전학 갈 날을 받아 놓고 만나게 된 거다. 이때만 해도 여름은 오지 않을 것 같은 추운 날씨였는데 어제 만남에서 나는 못내 아쉬워 '시간이 참 빨라'라고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끌로에가 같이 가자는 장소들은 나도 즐겨찾기 해 놓은 곳들이었고 인스타용 가벼운 힙함 말고 진짜 힙한 곳들을 어떻게 한국말도 서툰 끌로에가 다 알고 찾아다녔는지 지금도 모를 일이다. 한 번은 이태원에 있는 독립서점에 같이 갔었는데 서울을 찍은 사진집을 기념으로 한 권 사고 싶댔다. 서점 주인이 도시 별로 사진집이 있는 책장 앞으로 안내했고 하필 서울만 품절이랬다. 어쩔 수 없지 하는데 우리 뒷손님이 어디서 찾은 건지 서울 편을 들고 계산하셔서 더 아쉬워했다. 그때 처음 내가 찍은 서울 사진들을 모아 제본 해 선물할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끌로에가 찍은 한국의 사진들과 내가 찍은 프랑스의 사진들을 모아 책을 한 권 만들어 보면 어떨까 제안했고 그 일로 몇 번 만나 서로의 사진을 교환하고 골랐다.


끌로에가 돌아가면 슬플까? 초등학교 때 친한 친구를 외국학교로 보내고 든 울적하고 슬픈 마음보다는 덜 할 거다. 우리는 쉽고 빠르게 언제든지 서로에게 접속할 수 있을 테니. 물론 그렇기에 그리움도 덜 할 거다.


어느 오후, 외국인이 공적 마스크를 어떻게 구입해야 하는지 몰라 끌로에 대신 아무 약국에 들어가 물어봤었는데 그때 서로의 나이를 알게 됐다.

'외국인도 출생 연도 끝자리에 맞춰서 사면된대. 나는 8로 끝나서 수요일이야 너는?'

'나는 3으로 끝나 그럼 너랑 같은 수요일이네 근데 너 32살이었어? 나보다 5살이나 많네. 너 늙었다'

라고 끌로에가 서슴없이 말하는 바람에 길에서 깔깔대며 웃었다.


첫 만남에 서로의 가방에 들어 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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