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처음 꽃을 접했다. 우연히도 내 첫 꽃 선생님을 비롯해, 혼자 들기도 버거울 정도의 장례식 꽃을 가르쳐줬던 '올해 최고의 노동자 ouvrier' 상을 받았던 플로리스트나 인턴이나 계약직으로 일하며 배운 꽃집들도 대부분 남자 플로리스트가 운영했다. 여름을 제외하곤 항상 춥고 서늘한 곳에서 종일 서서 일하는 이 직업은 우아한 발음과는 달리 노동직에 속한다. 꽃이 아름답지만 전투적이라는 걸 꽃집에서 일하며 몸소 실감했다. 우아하게 꽃을 꽂는 건 이 직업의 10분의 1 정도에 해당하려나 싶을 정도로 대부분은 몸을 혹사시키는 매우 고된 일이다. 식물이 식재된 화분이나 물이 가득 찬 십 키로가 넘는 화기들도 번쩍번쩍 들어야 하고, 찬 물에 손을 넣었다 뺐다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피부도 금방 상한다.
꽃 클래스를 한 번 하려면 최소한 차가 있거나 도와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열 단이 넘는 꽃을 이고 지고 거기에 도자기로 된 화기며, 부자재들을 나르려면 하나의 몸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목요일 밤, 수입꽃이 들어오는 도매 꽃시장은 밤 11시 반이 되면 칼같이 불이 켜지고 문이 열린다. 막 꽃을 들여와 진열하기 시작해 온갖 박스와 신문지가 발에 차이고 '사장님 얼마예요?'를 하도 외쳐대 옆사람이 하는 얘기도 잘 안 들릴 정도로, 단지 생선이나 육류가 아닌 꽃일 뿐 여느 도매시장 못지않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서울 여기저기에서 팝업 클래스를 열고 있는데, 이번엔 친구들이 새로 문을 연 공간에서 <플라워 마티니>라는 이름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됐는데 새벽에 미리 꽃을 가져다 놓으려 미리 열쇠를 받아 둬야 한다. 차에서 자재를 꺼내 두세 번 정도를 왔다 갔다 하고 신문지에 둘둘 말린 꽃들의 잎과 줄기를 제거하고 물을 올려놓는 컨디셔닝까지 하면 비로소 클래스를 하기 위한 밑 작업이 끝이 난다. 새벽 3-4시쯤 잠을 청한다.
클래스에 오기로 한 지인이 '준비 잘 되 가?'라고 안부를 물어, 생업인 아이들 가르치는 학원에 출근하며 '응!' 하고 답장했다. 결국 금요일 저녁의 꽃 클래스를 위해서 내가 하는 준비란 그 주의 일상을 치열하고 무사하게 보내는 거였다. 수강생들도 마찬가지리라. 각자가 이러저러한 한 주를 보내고 하나의 목적, 꽃을 꽂으러 한 자리에 모인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하는 일이 여느 꽃집에서 하는 꽃 일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어쩌다 보니 플라워 마티니의 개시를 지인들과 함께하게 되었는데 나름 처음의 의미를 담아 케이크도 하나 주문했다. 이 날 학원에서 6,7세 남자아이들과 함께 할로윈 가면을 만들었는데 평소와 다르게 어찌나 신나 하던지 뛰어다니고, 종이로 칼을 만들어 대결하는 걸 말리느라 정말 진이 다 빠졌었다. 꽃 클래스를 할 성수동 오니리크로 가장 빠른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서 쏟아지는 피로에 클래스 때 헛소리를 하지는 않을는지 심히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렇게 겨우 한 시간 전에 도착해 준비를 마무리하고 옷을 갈아입고 호스트로 손님들을 맞이 하자니 오랜만에 본 얼굴들이 그저 반가워 피로는 잠시 잊고 안부를 나누고 깔깔댔다. 마침 최연소 수강생인 지인의 5세 남자아이도 함께 와 모두의 귀염을 독차지했다. 다음 날이 할로윈이라고 알아서 분장을 하고 와 준 지인들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엄마 배고파' 하는 아이의 한마디에 클래스 끝나고 먹으려 했던 케이크를 바로 꺼내 나눠 먹고 나서야 클래스를 시작했다.
꽃꽂이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인위적으로 모방한 거예요, 그러니까 정해진 것 없이 각자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거죠.
라는 첫마디와 함께 이런저런 이론을 짧게 소개하고 '자 이제 한 번 해보세요!' 한다. 여느 꽃 클래스와 같이 샘플을 미리 만들어 보여주며 따라 하라고 하지 않는 데는, 사람은 뭐든 보여주고 나서 '자유롭게 해 보세요' 한다 한들 그 이미지에 사로잡혀 최대한 그것과 비슷하게 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편이 훨씬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마치 흰 도화지에 '자 이제 원하는 걸 맘껏 그려보세요'와 같이 오로지 내가 하나하나 꽂아 가며 창작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록 소재들이 밑그림이 된다는 식의 기본적인 이론은 들어가야 한다. '선생님 이렇게 하는 거 맞아요?' 하는 질문들이 몇 번 오가고 나면 어느새 오로지 각자가 앞에 놓인 화기와 꽃에 집중하는 고요의 시간이 찾아온다. 나 역시 꽃 작업을 하며, 고도로 집중했을 때 귀에서 소음도 차단되는 이 경이로운 순간을 여러 번 경험했다. 중학생 때 처음 이젤에 그림을 그릴 때 이렇게 그림에 빠져 있을 때 뒤에서 선생님이 '이제 좀 뒤로 몇 발자국 나와서도 봐봐' 하면 그때서야 현실세계에 다시 접속하는 기분이 들며 안 보였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수강생들이 삼분의 이 정도 작업을 했을 때쯤 테이블 위에 잘라진 줄기들도 좀 치우고 뒤로 나와서도 보고 화기를 돌려가 보며 작업을 마무리하라고 한다.
내가 처음 꽃을 배울 때 도형이나 선으로 배웠었어서인지 마무리로 선의 요소에 해당하는 갈대나 긴 줄기가 돋보이는 소재들을 준다. 그러면 또 다른 깊이감이나 분위기가 생기며 완성의 느낌을 더한다. 그렇게 했을 때 같은 꽃을 썼지만 다 다른 느낌의 개성 있는 작품들을 완성시키고 그건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아름다움이 된다.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오랜만에 집중해서 좋았다는 후기를 들려줄 때 문득 깨달았다.
내가 사람들과 나눈 건 평소의 일상과는 조금 다른 좀 더 나에게 집중한 즐거운 시간을 공유한 거고 꽃은 덤이었구나. 그런 의미에서 꽃집보다는 선물가게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위한 선물인 동시에 그 시간을 담은 꽃을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선물하기까지 한다니, 멋지지 않은가.
이렇게 또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무사히 꽃 수업을 마쳤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