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은 화물용 트럭에서 이른 오전, 일정한 시간에 내려졌다. 암스테르담, 혹은 그보다 더 먼 나라에서부터 물 없이 며칠씩 걸려 도착한 그 생물들은 우아하긴 커녕, 살아있는 것 같지도 않은 모습으로 신문지나 박스에 뉘어 있었다. 프랑스 앙제에서 일했던 꽃집은 일주일에 두 번 꽃이 들어왔는데 꽃을 가득 실은 트럭이 오기 전 수십 개의 플라스틱 통에 물을 받아둬서 지친 꽃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꽃 일을 시작하기 전엔 꽃을 사 본 기억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꽃을 접하며 가장 많이 한 일이 꽃을 버린 거다. 야채를 다듬듯 위에서부터 삼 분의 일 지점을 제외하고 그 밑의 모든 잎을 떼고 정리해주는 '컨디셔닝' 작업만 해도 여러 시간이 걸린다. 그 작업을 거친 후에야 꽃 집에 예쁘게 진열돼 있는 비로소 우리가 아는 꽃의 모습을 갖춘다. 흙에서 자랐대도 이미 한 번 잘려 온 절화이기 때문에 물을 최대한 깊이 빨아들일 수 있게 줄기를 사선으로 잘라준다. 그러면 그 생기 없던 꽃들이 점차 기지개를 켜는 것 같이 얼굴을 빳빳하게 든다.
장미 한 단을 다듬고 나온 쓰레기는 장미 한 단에 버금간다. 꽃 집에서 일할 때 하루에 수십 번 비질을 하는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버려지고 잘라진 잎과 줄기에 바닥을 점령당한다.
꽃 일은 단순히 꽃이 좋아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일단 밤 열두 시에 문을 열고 다음날 낮 열두 시에 문을 닫는 꽃시장에 다니려면 남들이 자는 시간에 깨어 있을 정도로 부지런해야 하고, 기본 열 단, 스무 단 씩을 양 손에 들고 다니고, 물이 든 화병도 번쩍번쩍 옮기려면 힘이 좋아야 한다. 그리고 웬만한 꽃집엔 의자가 없다. 종일 서서 일하는 직업이고 꽃은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뭐든 따뜻한 건 안된다. 내가 일했던 프랑스 꽃집들에선 겨울에 정말 정말 추울 때만 벽에 설치된 라디에이터를 틀었었다. 실외에서 일하는 것처럼 옷을 껴 입고 일했었다. 쉴 새 없이 손에 물이 닿기 때문에 피부도 상한다. 가시에 베건, 꽃 칼에 베건, 대일밴드를 붙이는 게 별 소용이 없다. 5분도 안 돼 또 물을 만져야 하기 때문이다. 꽃 일을 하려면 파상풍 주사를 미리 맞아야 한다는 것도 꽃을 접하기 전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꽃에 큰 관심이 없었을 때보다 꽃을 알아갈수록 꽃을 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단순히 꽃의 아름다움만을 감상하고 소비하기엔 나는 이 꽃들이 어디에서 왔고 나의 손을 거쳐 어디에서 완성되고 또 얼마나 살다 가는지가 궁금하다.
꽃이 시들면 더 이상 꽃이 아닌가? 꽃은 언제부터 시든다고 봐야 할까? 꽃이 시들기 시작하는 건 꽃의 마음이지만 그 끝을 정하는 건 결국 꽃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런데 꽃이 일반쓰레기던가? 시든 꽃들을 안고 쓰레기통 앞에서 망설인다.
아마도, 그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