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는 그때그때 일 주는 사람이 직장 상사다.
이제껏 프랑스에서부터 해 온 일을 보자면 꽃집 인턴 혹은 단기 알바, 한인식당 알바, 게스트하우스 알바, 아동/성인 정신병원 아트테라피 인턴 정도이다. 그 후 한국에 와선 프랑스어 통역 알바, 포스터 제작 알바, 대안학교 미술강사 근무, 아동미술학원 강사, 책모임 진행, 정신분석센터 단기 아트테라피, 꽃 클래스 진행, 미술과외 등이다.
직업적으로 보자면 주로 선생님으로 불리거나 5월에 한 전시회에선 작가로 불렸다.
통상 프리랜서로 불리는 나의 다양한 일들은 짧게는 일회성으로 한 번만에 끝날 때도 있고 한 분기 혹은 반년, 길게는 일 년 정도 어딘가에 임시로 속해 일하기도 한다.
연이 닿아 경기도권의 고등학교 학생이나 교사 대상으로 꽃꽂이 수업을 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사업자도 내지 않았고 공간을 따로 임대하고 있지도 않았어서 내가 도매로 구입한 꽃과 자재에 대해 세금 명세서를 발급할 처지가 아니었다. 이미 공간을 내고 꽃 일을 하고 계신 엄마 지인분께 사정해 그분께 10퍼센트를 떼고 학교 행정과에 어찌어찌 필요하다는 서류를 건넸다. 이런 단체 수업에선 재료비와 경비만 해도 큰돈이라 처음 문의 왔을 때 수업료의 반을 선금으로 주셔야 한다는 것과 수업 전에 미리 가서 준비할 여유 시간을 주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었고 그래 주신댔다. 그런데 막상 일이 진행되고 보니 행정과에서 학교 경비로만 처리하다 보니 수업이 끝나고 전액 지불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하여 곤란했었다. 나로서는 유일하게 내 건 조건이 너무 쉽게 어겨져 수업료 전액은 과연 제 때에 받을 수 있는 건지 염려가 되기 시작했다. 관례를 찾느라 주변 프리랜서들에게 물었더니 계약서를 쓰거나 어느 서면에라도 '일주일 내에 지급한다'는 말을 적으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래서 엄마 지인 분께 부탁한 세금계산서의 특이사항에 저렇게 한 줄을 적어서 보냈다. 그랬더니 학교측에서 바로 전화가 와 이렇게 명시하는 건 곤란하니 저 말은 빼달라고 했다. 부당한 요구를 한 것도 아니고 이미 약속된 내 권리에 대한 한 줄이 대체 어떤 점이 곤란한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미 일이 많이 진행됐던 터라 이번에도 내 쪽에서 양보하여 저 말을 지우고 다시 보냈었다. 꽃 수업이 아닌 부수적이고 행적적인 일에서 스트레스와 압박이 있었지만 막상 수업 날 가서 얼굴을 뵈니 불러주셔서 감사했고 반가웠고 수업도 잘 마쳤고 수업료는 약속대로 며칠 내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내가 하는 일만 신경 쓸 뿐 아니라 그 주변 일들도 동시에 해나가야 한다는 게 고달프기만 했다. 당장 내 의견을 굽혀야 하다 보니 '학교는 항상 이런 식인가' '세대 차이 느껴' 하는 식으로 나를 방어했었다. 그러다 일이 진행이 되고 좀 물러설 수 있는 여유가 생기자 그들도 사회생활을 많이 해보지 않은 나를 같은 이유로 답답하게 봤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젊은 사람들이랑은.. 자기 생각밖에 안 하니'라는 생각을 충분히 했을 수 있다.
프랑스 낭뜨의 40대 남자 플로리스트 띠에리가 운영하는 꽃집에서 인턴을 할 때 점심시간마다 그가 헬스장에 운동을 하러 간다는 걸 알고 철저한 자기 관리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저만큼 하니까 손님이 끊이지 않는 거겠구나 싶었다.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는 그때그때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 내게 일을 주는 사람이 곧 직장 상사이자 선배가 된다.
상대가 꼭 나이가 많지 않다 해도 마찬가지다.
반나절만 같이 일을 한다 해도, 전과 같은 업무라 해도, 일을 같이 하는 상대가 매번
다르기에 전과 다른 점이 생기고 새로 배울 점이 생긴다.
무급 인턴을 시키던, 시간당 고가의 금액을 주는 일이던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제대로 봐주지 않는 게 가장 힘들다. 지인이 슬쩍 '네가 이런 걸 잘하잖아 한 번 생각해 봐 줄 수 있어?' 해서 곰곰 생각해 몇 개의 안을 가볍게 말했고 그 일은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후에 또 연락이 와서 그때 그 아이디어 잘 썼다며 이번엔 더 중요한 일이 있는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냐고 또 물었다. 그래서 '지금 나한테 일을 주는 거냐'라고 물었더니 에이 그런 거까진 아니고 그냥 한 번 생각 좀 해 달라는 거지 해서 알았다 둘러대고 전화를 끊고 나서 헛헛한 마음이 들었었다.
코로나 덕분에 집에서 편하게 이슬아의 라이브 강의를 유튭으로 들었는데 프리랜서 세계에선 자기가 자기의 정체성을 내세워야 한댔다. 내가 작가이다라고 용기를 내서 깃발을 꽂아야 한다는 거다. 그렇게 내 몸값을 정하고, 페이에 대한 기준을 정해 나가고. 강연 내내 댓글로 질문할 수 있었는데 계속해 나가는 것에 대한 노하우가 궁금했는데 김연아 얘기를 하며 '계속하는 사람들은 그냥 생각 없이 한다. 저 같은 경우는 제 기분에 마이크를 주지 않는다. 내 기분이 어떻든 간에 나는 오늘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그냥 한다'라고 당연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얘길 들려주었다.
내가 삼일 연속 실내 자전거를 타는 걸 보고 엄마도 따라서 자전거 안장에 오르셨고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까지 타시더니 좋다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