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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Nov 19. 2020

사실 토끼 다리는 네 개야

요즘 꿈에서 가끔 낭뜨에 간다. 나는 지나온 길은 잊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형임을, 학창 시절의 그 어떤 추억도, 몇 년 전 친구와 나눈 대화기억을 하지 못하며 새삼 깨달았다. 그런데 최근에 문득, 뜬금없이 내가 걸었던 유럽의 수많은 돌길의 감촉이 찰나의 영상과 함께 떠올려졌다. 그러면 멈칫한다. 내가 정말 그 길들을 걸어왔던가, 불과 몇 년 전인데도 꿈처럼 느껴진다.

꿈에서 찾아가는 낭뜨는 온갖 흔한 유럽의 돌길과 건물들을 전부 합쳐놓은 것처럼 보인다. 꼭 낭뜨가 아니라 이태리의 어느 골목일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돌아'갔고 나의 친구들이라고 하는 이들이 나를 반겨준다. '잘 왔다'고 한다. 어느 골동품 상점에 들어가 단골가게인 듯 주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그러곤 뭔가를 열심히 찾는다. 마치 내가 전에 맡겨두기라도 한 것처럼. 꼭 가져가야 할 물건인데 산처럼 쌓여있는 잡동사니들 사이를 요리조리 다니며 다 들춰봐도 끝끝내 찾지 못하고 주인과 아까보단 아쉬운 눈빛으로 인사를 하고 걸어 나온다.

엊그제 꿈에선 낭뜨에 가니 날 반갑게 맞아준 이가 '나의 절친'이었다고 한다. 유례없이 우리는 팔짱을 끼고 시내를 누볐다. 그렇게 여자 친구와 아무 걱정과 목적 없이 활보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다. 그런데 돌연 그 친구가 아파한다. 그러곤 내가 길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사그라지듯 그 자리에서 죽는다. 명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고 아마도 돌고 있는 전염병일 것이라고들 말한다. 나 역시 그럴 거라 지레짐작하며 받아들여 보려 하지만 그를 끌어안고 부끄러운 것도 잊고 목 놓아 울었다. 어린아이 일 때 같이 놀던 친구와 혜어져서 더는 같이 놀지 못하게 되어 슬픈 마음이었지 어른의 죽음, 같은 훨씬 무겁고 복잡한 감정은 아니었다. 그 꿈에서 깨어난 직후 슬픔보다는 개운함이 들었다. 막연하게 낭뜨의 길 한복판에서 죽은 그가, 생각해보니 내가 알던 누구의 얼굴도 닮지 않거나 혹은 그 모두의 얼굴을 합쳐 놓은 그가 실은 내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그곳이 아닌 여기에 있은 지 정확히 2년 반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나는 이 곳이 지금 내가 있는 곳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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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꿈을 꾸고 길을 가다 내 앞에서 무너지듯 슬로우 모션으로 넘어지는 사람을 두 명이나 봤더랬다. 시장통에서 넘어진 그 여자는 같은 동년배 남성에게 부축받으며 '어딜 보고 다니셔' 하는 꾸지람을 들으며 어안이 벙벙해했고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의 '어어' 하는 소리와 함께 '쿵' 소리가 나며 뒤통수부터 넘어진 그 여자는 왜 자신이 그렇게 된 건지조차 알지 못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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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여 현실에 발 붙이려 하지 않아도 또래 친구들을 만나건 오랜만에 누군가와 안부를 전하건, 친구의 결혼할 사람을 처음 소개받은 자리에서도, 어떻게 벌어먹고살지로 모두와 한 마음이 된다. 서로의 취향이나 생김새가  달라도 상관없다. 듣고 보면 다 같은 상황이고 모두가 절망과 희망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과는, 그야말로, 아직 실제로 본 것보다 앞으로 봐야 할 게 더 많은 이 아이들과는 유일하게 돈 얘기를 하지 않는다. 사실 토끼의 다리는 4개이고 토끼에겐 수염과 꼬리도 있다는 이야기 같은 걸 최대한 설득력 있게 하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이들에게만은 내가 가진 것들을 과시하고 팔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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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리 최신 기기나 어플에 서툴러도 나 역시 현대인이다. n잡러라니, 웃음이 난다. 내가 하는 일에 저런 말을 만들어 붙일 필요도 없이 아침부터 밤까지 수많은 다양한 일을 한다. 현대인의 아이러니란, 유튜브에서 일정과 시간을 관리하기 위한 최고의 어플 사용기를 수없이 찾아 돌려보고 정작 그곳에 오늘 할 일을 기입할 시간과 여유도 없이 하루를 마감한다는 거다. 어쩌면 내가 아닌 누군가는 이렇게나 시간 관리를 하며 살고 있다는 위안을 얻으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네팔에서 만든 온갖 마른 잎이 든 루프 인센스를 켜고, 인도에서 오천 년 전부터 재배하고 약용한, 얼굴에 빨간 점을 찍은 여인이 그려진 차를 미국에서 주문해서 마신다. 오천 년 전부터 죽지 않고 살아 삶의 비밀을 알고 있는 얼굴을 하고 있다. 설거지를 하려고 해도 편의성과 물 절약을 위해 만들어 둔 발 페달에서 '순간'과 '연속'을 선택해야 한다. 습관적으로 밟아 왔지 식탁 의자에 앉아 나란히 쓰인 저 두 글씨를 보는 건 처음이라 무척 생소하다. 마치 나의 삶이 '순간'이길 바라냐 혹은 '연속'되길 바라냐고 선택을 강요받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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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겪은 일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현대시 같은 글이 돼버린다. 지금, 여기를 살아간다는 게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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