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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Jan 10. 2021

프로이트 <정신분석 강의> 리뷰

프로이트와 라깡 정신분석을 공부한 지 어언 해가 넘어갔다. 그동안 두 번의 시험을 봤고 과제도 제출했으나 여전히 강의를 듣고 이론을 접하면 새롭고 재미있다. 들을 때마다 머릿속이 깨끗하게 리셋된다는 얘기다. 누군가가 일생일대에 걸쳐 성립한 이론을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살면서 존경할만한 인물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럿 접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경외심이 든 건 처음이다.

일단 한 달여에 걸쳐 코로나 시대에 걸맞게 줌으로 독서모임을 진행했고 꽤 원활했다. 이젠 거의 모든 일을 줌으로 처리하는데 꽤 익숙해진 것 같다.

제일 첫 시간엔 각자 분량을 정해 두 강의 정도를 발제했는데 리뷰를 쓰려면 전체 책을 각자가 다 읽어야 했으므로 다음 모임에서부턴 각자 읽은 부분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자유롭게 나누고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면서 정리도 됐고 한번 더 요약도 됐고 책이 재미있다느니, 어느 부분은 좀 더디게 읽힌다느니 하는 얘기도 나왔다.

<정신분석 강의>는 프로이트가 3년에 걸쳐 강의한 스물여덟 개의 강의를 모아 놓은 거의 700페이지에 달하는 책으로, 흡사 입문서로도 느껴졌다.

실수 행위들, 무의식, 꿈, 신경증, 리비도, 성생활, 불안 등 여러 주제가 나열되어 있는데 프로이트가 직접 본 환자 사례의 양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말을 잘못하거나, 농담을 하거나,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하는 경우 그에 따른 이유가 있다는 조목조목한 해석에 나의 경우도 되짚어 봤고, 2부에서 총 11강으로 꿈에 대해 다뤘을 땐 우리가 흔히들 꿈을 꾸고 찾아보는 꿈-해몽과 프로이트의 꿈-해석은 어떻게 다른 건지, 이 당시 사회적으로 억압되어 있던 일반 여성들이 꾼 꿈의 사례들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인 내가 꾸는 꿈-해석과는 어떻게 다르게 접근해야 할지 등을 염두하며 읽었다.

이 당시에도 정신분석의 지평을 연 프로이트는 그저 환영받고 추앙받기보단 정신분석에 대해 수많은 의심 앞에서 그 효과를 끊임없이 입증해 내야 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켰고 수정해 나갔다. 프로이트가 지금에 비해 사회적 지위가 현저히 낮았던 여성들, 알 수 없는 증상들을 가지고 앞에 앉은 여성들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하면서 무의식과 자유 연상이 탄생했다. 그 여성들에게 자유롭게, 의식의 흐름에 따라, 혹은 의식의 흐름을 뛰어넘어 ‘말을 한다’는 건 분명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말을 한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졌을 거다. 그러면서 이 단순한 말을 하고 들어주는 행위로 그들의 알 수 없는 증상은 호전되거나 없어졌다. 자신이 꾼 꿈이나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도무지 알 길이 없어 정신분석가를 찾았는데 자유 연상을 통해 결국 그것들의 의미를 알아내는 건 그들 자신이다. 나는 분석을 받아본 적이 없지만 독서모임의 멤버 중 분석을 받고 계신 분이 하신 말이 인상 깊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은 모를지도 몰라요, 내가 변했다는 걸요. 그리고 그 변화는 아주 서서히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나죠. 가장 중요한 건, 그 변화가 꼭 좋은 쪽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죠. 그렇지만 분명한 변화가 내 몸에서 일어나요’

저 말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과학과 종교에 반해 스스로의 입지를 분명하게 해야 했던 것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이트는 이 강의들에서 정신분석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하지 않는다. 어떠한 노력 끝에 환자가 가진 증상을 없애는 것만이 목표가 돼서도 안된다고도 한다.

그가 어떤 의도에서든 이렇게 많은 사례를 이 정도로 꼼꼼하게 기록해 놓은 것을 보면 그가 환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봐주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각각의 사례들은 마치 단편소설을 읽는 것과도 같아 책의 두께가 상당한데도 꽤 술술 읽히고 책을 덮고 나면 뭔가를 알게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그건 흔히 프로이트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프로이트는 매 강의마다 자신의 이론을 펼치고, 그에 대해 여러분은 이러이러한 반박을 할지 모른다고 이미 꿰뚫고 있고 바로 다음에 그 반박이나 의심을 잠재울만한 설득을 내놓는다.

프로이트의 장장 15권에 달하는 전집 중에 한 권일뿐인 <정신분석 강의>는 충분히 정신분석이란 대체 무엇인가, 무의식이란, 그 모든 근저에 깔린 리비도란 무엇인가에 관한 기본적인 궁금증을 한 꺼풀 벗겨줄 만한 훌륭한 입문서 임에는 틀림없다. 이것을 계기로 꿈의 해석이라던가, 히스테리 연구,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 등을 본격적으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것이 소수의 이론서가 아닌 대중서로도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프로이트 #프로이트전집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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