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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May 20. 2021

엄마, 나는 커서 여자가 될 거예요

Petite fille / 세바스찬 리프쉬츠

한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그 나라에 직접 가보지 않아도 그곳과 충분히 깊고 다양하게 관계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준다.


한국에 온 이후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기초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다. 지금은 같은 공부를 하는 한국라깡임상분석협회생 몇몇 분과 가장 초급인 A1부터 시작해 A2에 막 들어선 참이다.


지난번 독해 수업 때 프랑스 여배우 레아 세이두가 2020년 11월,  마담 피가로 잡지에서 그녀의 4살 난 아들에 대한 교육관을 언급하는 기사를 가져왔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아들을 두고 "Je ne le genre pas."라고 말한 부분이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고, 그가 원하는 대로 옷을 입고, 그가 원하는 사람을 사랑할 자유를 갖게 될 거예요.라고도 했다.


Genre는 남성 명사로 장르, 혹은 성을 의미하는데 '나는 그를 장르 짓지 않을 거예요'라고 자유롭게 해석했다. 그 안에는 성별의 의미도 포함된다고 본다.


멋지고 이상적인 매우 프랑스적인 생각이다. 사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저런 마음으로 아이를 키울 거다. 그러고 싶을 거다. 그렇지만 마음먹은 것처럼 쉽지 않을 거라는 것도 짐작이 된다. 무조건 아이가 원하는 대로만 키우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내 아이가 엄마 나는 몸 속에 갇혔어요. 하며 매일 아침 일어나서부터 몸의 이질감, 불편함을 토로하거나 같은 성을 사랑한다 하며 혼란스러워 할 때 아이에게 그건 잘못된 생각이고 너는 아픈거야, 너를 고쳐줄게 라고 말하는 대신 그의 옷차림과 생각을 그대로 받아 들여주고 지지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된다는 게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닐거다.


이번 수업 독해엔 2020년에 프랑스에서 개봉한 세바스찬 리프쉬츠 감독의 다큐멘터리 < Petite Fille > (영어 제목 Little girl)의 소개와 감독 인터뷰가 담긴 영상을 가져왔다. 라깡 강의 때 수련 선생님이 두어 번 언급한 적이 있었던지라 공통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최근에 왓챠에서 수입을 해 한글자막과 함께 볼 수 있게 되었고 우리 모두 몇몇 조각들만 본 상태였다.


머리를 기르고 치마를 입은 새초롬한 표정의 아이가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나는 커서 여자가 될 거예요!' 그게 이 아이의 유일한 꿈인 것처럼.


씬이 바뀌어 엄마와 아이는 아동 전문 정신과 의사 앞에 앉아있다.

'사샤 우리가 왜 여기에 왔지?'

-그건..

'넌 누구야?'

-전 소녀예요

'그렇지. 그런데 넌 여자아이로 태어났니 남자아이로 태어났니?'

-남자아이요

'그래서 우리가 이 곳에 온 거죠'

의사 선생님은 '그렇다면 잘 찾아오신 거예요' 한다.


엄마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사샤가 전학 가야 하는 걸 무척 두려워해. 여기서 친구들도 사귀었고 그 애들이랑 잘 지내기도 하고. 아이들은 이런 걸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받아들이기도 하는데. 어른들도 그랬으면 좋겠어'라고 한다.


사샤의 엄마를 비롯한 가족 구성원들, 정신과 의사 등은 이 아이를 지지해주는 걸로 나온다. 감독은 이 아이가 지금 시대의 영웅이라고 말한다. 이 아이는 매일이 투쟁이에요. 이 아이가 느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있기 위해서다. 뭔가가 해결된 듯 보인다. 그런데 정말 끔찍한 건 그 뒤에 이어서 또 다른 게 끝없이 밀려든다. 그걸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사샤 본인이다. 학교와 발레학원에서 이 아이가 치마를 입고 오는 걸 반대하는 걸 보니 프랑스도 꽤나 보수적이다. 그의 큰누나는 그게 아무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는데 대체 왜 허락해주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이 날 5분짜리 인터뷰 영상 독해를 마치고 우리는 이례적으로 30분 가까이 토론을 했다. 이 다큐는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자신의 몸과 태어난 성별에 불쾌감을 갖는 dysphorie de genre 젠더 디스포리아에서 transsexualisme 성별 도착에 이르는 이슈로 화제가 됐던 바 있다. 유튭 영상이나 소논문 형태로 라깡정신분석가들이 이 영화와 아이에 대해 말한 자료들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라깡정신분석이 세상에 꼭 필요한 이론이자 클리닉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개인의 고유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증상을 가진 한 개인의 고유성이 지켜지는 방식은 모두가 말하는 행복이나 성공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정신분석가의 윤리를 지켜내며 그가 정말 있어야 할, 있고 싶어 하는 자리에 세우고 조금씩 세상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루하고 연대의 끈 안에 들어오게 하는 과정을 함께 동행해 주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와 같은 증상을 토로하고 성별 불쾌감을 가진 이들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성인의 경우 수술까지도 독려하는 건 바람직한 분석가의 윤리는 아니다. 단순한 수술이나 작은 사고를 겪고도 정신증이 발병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실재를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다른 몸을 갖는 걸 평생 바라왔다 하더라도 그 과정이나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실재)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선 비용만 치를 수 있다면 뭐든 용인이 되고 그 책임 또한 한 개인에게 전가된다. 그렇기에 성전환 수술 같은 큰 이슈를 앞두고 적어도 수개월에 걸쳐 정신분석가와 만나는 절차가 필요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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