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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파고 Dec 28. 2020

달빛 아래 난간에서
날고 싶었네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까 어렸을 때도  매달려 있는 걸 좋아하긴 했네. 그땐 귀엽기라도 했지.  @정파고




2.5미터 높이의 난간에 두 팔을 쭉 뻗어 매달리면 지면과의 차이는 50센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내 키에 팔꿈치 길이를 더하면  2미터는 넘을 테니까. 보통 의자 높이가 45 정도니 좀 높은 의자 위에서 폴짝 뛰어내리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수직으로 착지하면 뭔가 내려 꽂히는 상상과 함께 어마어마한 충격이 발생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는 중력과 무게와 운동에너지 등등 상식적인 거니까. 2020년 5월 2일 밤 12시를 막 넘긴 시간 나는 철봉처럼 매달려서 주섬주섬 그런 생각들을 했다.


밤에 베란다 난간에 나왔다가- 왜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 문을 철커덕 닫아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밖에서는 열리지 않는 철통보안 잠금장치 앞에 망연자실 모든 경우의 수를 궁리해도 답이 없었다. 누구든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체면이고 뭐고 좀 잡아달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아니, 더 점잖은 방법이 있잖아. 인터폰으로 우리 집에 연락해주면 창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고. 하지만 언제 사람이 나타날지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다.  달빛과 가로등 불빛만 고독한 나를 비춰줄 뿐이었다. 휴대폰만 있었다면 무슨 문제랴. 여러분 이제 휴대폰은 생명입니다. 집 안에 곱게 놔두고 다니면 안 된다. 이중창 때문에 내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안에서 들을 수 없다. 진정 고독했다. 나는 혼자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2층이면 해볼 만 해. 그렇게 높지 않았어. 결국 난간을 잡고 뛰어내리기로 했다. 나는 사선 아니  완만한 포물선으로 착지하는 걸 머릿속에 그렸다. 그런데  허공에 매달린 순간, 뭔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바닥이 이렇게 멀어보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발목을 보호하려면 어떻게 착지를 할까 연구했다. 그네 타듯이 앞뒤로 준비운동을 한 다음 내가 도착할 앞쪽을 보며 부드럽고 가볍게 몸을 날렸다. 최대한 공중으로 띄우는 기분으로 새털처럼, 자세를 잡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러나,  난간을 잡은 손을 놓았을 때, 나는 내 몸뚱이의 한없는 무게를 느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건 흡사 육중한 바위덩이를 매단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한 사뿐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한결같이 별일 없던 인생 이건만, 아닌 밤중에 낙하도 생뚱맞건만 추락을 할 줄이야.     

  

아주 짧은 착지의 시간, 그건 지면과 나의 충돌의 시간이었다. 평생 처음 충돌이라는 걸 해본 것 같다. 뿍? 뻑?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처음 맛보는 통증에 잠시 정신을 잃었다. 잠시 후 나는 바닥에 얼굴을 대고 무참하게 널브러져 버르적거리고 있었다. 밤이라서 사람이 없었지만, 대낮 사람 많은 길 한복판이었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너무 아파서 신음이나 비명이 아니라 끼잉 끼잉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차라리 까무러치면 좋겠다. 통증이 무시무시했다. 이젠 집에, 가족들에게 가야 된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어떻게 침대까지 가서 누웠는지 모르겠다. 나의 참변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자려고 누웠는지 집안은 조용하고 촉촉한 불빛에 잠겨 있었다. 일단 잠을 청했다. 내일 아침이면 뻐근하고 쑤셔도 병원을 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하면서. 그러면 나의 찌질하고 모양 빠지는 사고는 영원히 묻힐 것이다. 그리고 5분도 안 돼서 응급실로 가야 했다.


다리에 감각 있어요?


새벽 1시의 응급실에서 비명을 지르며 이런저런 검사를 했다. 의사가 자꾸만 내게 묻는다. 다리 감각 있어요? 여기 아파요? 움직여보세요.  감각이 너무 생생해서 죽을 지경인데 다리를 움찔거려야 했다.


보통 골반뼈라고 하는 하트 모양의 뼈가 있다. 하복부를 감싸고 허리와 다리를 연결하는 센터 역할이다. 정식 명칭은 장골이었다. 오른쪽 장골, 즉 하트의 4분의 1 지점에 칼로 자른 듯이 수직선이 내려 꽂혀 있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하트의 가운데였으면 엉치뼈가 박살이 나면서  척추신경을 다칠 수 있었다. 그럼 전신마비. 의사가 왜 자꾸 물어봤는지 알 것 같다. 비스듬한 각도의 필름은 어긋나 있는 게 보였다. 장골이 부러진 것이다. 그나마 깔끔하게 부러져 복합골절은 피했다. 응급실 의사는 어쩔 줄 몰라했다. 곧바로 입원을 시킬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일단 다음 날 다시 오라고 했다. 아파 죽겠는데 그렇게 이틀 연속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난 그냥 집에서 넘어졌다고 했다. 차마 그... 상황을 말할 수가 없었다.    

의사는 이건 교통사고나 추락했을 때의 상태라고 이상하다고 한다. 찔끔... 잘 아시네요. 장골 골절은 치료방법이 없다고 한다. 깁스를 할 수도 없다. 수술할 상태도 아니다. 유일한 치료라는 게 움직이지 않고 안전하게 붙을 때까지 꼼짝 말고 누워있는 것이라고 한다. 2주 입원 진단을 받았다.


병실을 수배하는 동안 대기해야 했다. 스트레처 카트에 누워 병원 로비의 광활한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입원할 때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하고 간병인을 구해야 한다. 절대 움직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대기시간이 길어지면서 파노라마처럼 앞일이 그려졌다.

나는 간호사에게 집에서 잘 누워있겠다고 하고 탈출하듯이 도망쳤다.


돌아오면서 보니 우리 집 베란다 높이가 3미터가 넘어 거의 4미터는 돼 보였다. 내가 이다지도 눈썰미가 없는 인간이었나.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바지를 벗어서 난간에 묶고 로프처럼 잡고 내려왔을 거다. 그 생각을 안 한 게 아니다. 차마 그럴 수 없을 만큼, 그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라고 할 만큼, 현실 파악이 안 된 것뿐.  


10년 전에 무려 6층 옥상에서 추락했지만 씩씩하게 재기에 성공한 고양이다.못 하는 게 없다. 나도 본받아서 씩씩하게 나아야겠다. @정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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