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파고 Dec 29. 2020

삶의 원초적 투쟁


때는 5월 초,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모두가 집에 있기 시작했다. 교민들이 속속 입국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처럼 하드한 자가격리를 하게 됐다. 전날 밤의 난간보다는 훨씬 덜 외로웠다. 나 말고도 전 세계 수천만 명이 갇혀서 살고 있다니 인류를 향한 우정과 동지애가 피어올랐다. 넘치는 시간과 90X180 센티미터의 공간이 나의 세상이 되었다.        


나는 고통에 약하다. 누군들 고통에 강할까마는, 엄살이 심하다는 말을 꽤 듣고 자랐다. 혹시 날 끌고 가서 뭔가 알아내려고 고문을 시작하면, 난 잠깐!!! 하고 그들에게 말할 거다. 뭘 알고 싶으세오. 그냥 다 말씀드릴게오. 우리 힘들게 가지 말아요오.


침대에 누워 숨을 쉬어도 통증이 밀려왔다. 언제까지 이런 건지 수면제를 먹고 나을 때까지 잘 수 없을까 생각도 해봤다. 2주만 참으면 된다는 희망으로 버텼다. 이상하게 내 침대의 절반을 차지하던 고양이들도 옆에 오지 않는다. 뛰어올라오면 꼭 체중을 한껏 실어 내 몸을 꾹 누르고 지나갔는데 뭘 아는 걸까?

역시 우리 고영님들은 천재라고 생각하니 알 수 없는 위안을 받는다.    

      

 아아 비루한 투쟁


모든 걸, 정말 모든 걸 누워서 해결해야 했다. 스테인리스 빨대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금속 맛 물을 마시며 광천수로 여기기로 했다. 어차피 할 일이라곤 먹고 자는 것, 그리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머나먼 여정뿐이다. 원래 간병인에게 다 맡기라고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어 도망쳤다. 두 팔과 정신이 멀쩡한데 반듯하게 누워서 배설하고 잠시 소중하게 보관하다가 남의 손으로 치워야 할 걸 생각하니 탈출만이 나의 존엄을 지킬 방법이었다.      


침대와 안방 화장실의 거리는 2.5미터 정도 된다. 나는 필요한 움직임 하나하나를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다. 일단 천천히 왼쪽으로 돌아누워야 한다. 오른쪽 골반은 절대 먼저 돌거나 늦게 돌아서는 안된다. 널빤지가 세워지듯이 반듯하게. 그리고 나면 왼쪽 팔을 디디고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다. 중심은 언제나 왼쪽 엉덩이에 유지하고 방향을 바꾼다. 이때는 어쩔 수 없이 아프다. 별 수가 없다. 그다음 다리를 하나씩 바닥에 내려놓고 두 발로 선다. 감격스럽다. 목발을 짚고 발을 뗀다. 의사가 오른쪽 발은 엄지발가락만 바닥을 디디라고 했다. 그래서 알았다. 엄지발가락만 골반뼈와 상관없이 작동한다는 것을. 한 걸음,, 두 걸음,, 일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누울 때까지 30분은 족히 걸리는 것 같다.


살아있으면 다 살게 마련이다



최대한 느리고 조심스러운 움직임. 목발로 화장실 문턱을 넘는 과정. 몸의 방향을 돌리고 제일 아픈 부위를 접어 변기에 앉는 과정. 자세를 취할 때까지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순전히 중력과 신체기관의 자가발전에 의해 소변이 배출되는 과정. 다 마치면 역순으로 동작을 반복하고 물을 내리고 손까지 씻고 다시 기나긴 여정을 위해 내가 가야 할 침대를 바라본다. 고지가 저기다.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무리해서 뼈가 붙는 게 늦어지면 안 되니까. 그래서 아픈 건 너무 싫으니까. 대미지 없는 귀환을 위해 다시 발걸음을 뗀다. 목발을 잘못 디디면, 아아 안 돼. 생각도 하기 싫다.    

  

대변은 더 엄청난 과업. 제일 두려웠던 건 변비였다. 생각만 해도 그건 지옥과 같은 형벌이다. 힘으로 밀어낼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변비 없이 일일 일 거사를 무사히 치르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친구가 지어준 한약 덕분이라고 확신한다. 뼈를 잘 붙게 한다는 약은 걸쭉하고 진한 물성으로 나의 장을 확실하게 지원해줬다.


누워서 먹고, 누워서 시간을 보내고 누워서 자다가(서서 자는 것보다 얼마나 다행인가) 가끔 일어나 대소변을 처리하는 것. 이 원초적인 행군 중에도 밥 먹고 그냥 잠드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루 세 번 이도 꼬박꼬박 닦았다. 이 과업의 횟수를 최소로 줄이기 위해 먹는 것과 싸는 것의 분배를 전략적으로 고심했다. 그것만으로도 고단한 하루였다.    


"2주 후에 뵙겠습니다."


이혼조정도 아니고 2주라니, 그 시간이면 좋아진다는 거구나. 그 희망으로 삶의 원초적 과업을 감내했다. 그깟 2주 대소변으로 인생을 바치는 것쯤 무슨 대수이랴.

하지만 2주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인 것을. 상태는 달라진 게 없다. 대신 머리는 떡지고 씻지 않은 얼굴과 몸은 점점 더러워 미칠 것 같았다. 그럼 살만해진 것인가. 전혀 아니다. 2주의 더러움이 쌓여 임계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일주일쯤 되니 움직이지만 않으면 통증은 해결된다. 그 사이로 불편함이 비집고 들어왔다. 침대에 닿는 피부가 근질근질한 게 견딜 수 없었다. 수억 마리 집먼지 진드기를 상상하며 누워있는 건 또 다른 고문이다.  


나는 이제 준비가 필요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했다. 6개월은 지나야 정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도 난 운이 좋군. 전신마비도 될 수 있는데 누워서 밥도 먹고 머리도 긁고 화장실도 출입한다. 이 정도면 정말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또다시 머나먼 행군을 앞둔 병사처럼 내 앞에 놓인 시간을 가늠했다.      


당면한 과제는 씻는 일이다. 크나큰 용기가 필요했다. 목욕탕에서 낙마하면 답도 없다던데. 이것도 혹독한 이미지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똑바로 서서 옷을 벗고 샤워기를 작동시킨 다음 그 상태에서 머리를 감고 내 손이 닿는 만큼 몸에 비누칠을 했다.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없이 무사히 해낸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이제 투병 중에도 깔끔한 상태를 유지했다. 일주일에서 3일로 주기도 빨라졌다. 머리를 감으려면 샤워는 자동 진행이라 더 깨끗했다.


깨달음에는 귀천이 없다


그런데 어느 날 허벅지 아래를 만지다가 깜짝 놀랐다. 내 피부 같지 않은 이상한 감촉이 전해졌다. 한 달째 물만 지나가던 부위라 차곡차곡 쌓인 노폐물이 비늘처럼 덮고 있었다. 옛날에 오브라이트라는 게 있었다. 생긴 건 피지 닦는 기름종이보다 더 얇고 부드러운데 약 먹을 때 썼던 것 같다. 입에 넣으면 흔적도 없이 녹아버린다. 그렇게 얇은 막이 만지면 불쾌하게 퍼석거리고 쭈굴쭈굴해진다.  


곤충의 날개가 이럴까? 어딘가 뱀이 허물을 벗으면 이럴 것 같기도 하고. 사람 때가 이렇게 되는구나 신기했다. 각질제거제가 필요해. 재빠른 검색으로 엄청난 효과가 있다는 제품을 주문했다. 변기 뚜껑 위에 앉아 다리에 뿌렸다. 5분 후 손이 닿는 허벅지를 문질문질 하다 무서워졌다. 물에 빠진 두루마리 휴지를 꺼내서 벗겨본 적 있는지.  때가 그렇게 떡져서 끊임없이 밀려 나왔다. 급히 아들을 불러 문지르게 했다. 옷은 입고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결국 중간에 다음을 기약하고 마무리를 해야 했다.


그 날 욕실의 배수구가 막혔다. 내 몸에서 벗겨진 때들은 성질이 바뀌며 찰흙처럼 다시 뭉쳐져 알차게 구멍을 막은 것이다. 말로만 듣던 신기한 일들이 나한테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나의 외피는 배수구 저 멀리 떠내려갔다.


그래도 비단처럼 매끄러워진 다리에 만족하며 잠이 들었다. 지금은 아들이 누워있는 내 머리를 말려줘야 하지만 조금 더 있으면 서서 혼자 말리고 뽀송하게 누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식탁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 목발을 짚더라도 집안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희망이 날 즐겁게 했다.      


생각지 못한 깨달음이 있는데, 골반뼈가 무지무지하게 중요하고 많은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힘이 들어가는 모든 동작이 골반뼈와 연결된다. 병마개를 딸 때도, 손톱을 깎을 때도, 발꿈치를 조금 들어도 5G 속도의 통증으로 반응한다. 

음식을 씹을 때도 무사하지 않다.  


원래 골반뼈가 받치고 있던 무게가 발꿈치로 이동했는지 침대에 닿은 뒤꿈치 부분이 제일 먼저 쓰라려오기 시작했다. 욕창의 전조라고나 할까.


당연하게 쓰던 육체가 날 내동댕이치자 그 위대함을 알게 된다. 앞으로 두세 달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 잘 살아야 했다.


 내 장골은 정말 많은 일을 묵묵히 하고 있었구나. 네가 있어서 난 뒹굴거리고 달리고 운전하고 다리를 꼬고 앉고 팔을 휘두르고 물건을 집고 쪼그려 앉아 냥이 화장실을 청소했구나. 내 몸을 지탱하고 날 살아 움직이게 했구나. 네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몇 달 동안 최선을 다해야겠구나.      

작가의 이전글 달빛 아래 난간에서  날고 싶었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