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찬란하지도 비참하지도 않은
내가 태어난 1985년, 당시 대통령은 그 악명 높은 전두환이었다. 각각 경남 거창과 대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인생의 대부분을 대구에서 살아온 아빠, 엄마는 그 시절을 물가가 안정된 좋은 시기로 기억한다. 2월에 태어나 이른바 ‘빠른 년생’인 내가 ‘국민학교’ 3학년 때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섰고, 6학년이 되자 ‘국민학교’가 아닌 ‘초등학교’를다니게 되었다.
남들보다 조금 이르게 찾아온 사춘기가 정점을 향해 치닫던 중학교 1학년, 나라는 IMF 외환위기라는 소용돌이에 휩싸였고, 다음 해 정권교체로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했다. 줄도산, 구조조정 등 심란한 뉴스 천지에도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금 모으기 운동으로 브라운관 속에는 매일 금빛이 번쩍번쩍했다.
‘이해찬 2세대’ 딱지를 달고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좋아하는 과목만 열심히 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교육부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진짜 좋아하는 과목만 공부했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그 맹목적인 믿음에 하늘이 감응했던지 초중고 12년 동안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서울대에 무려 정시로 합격했다. 그리고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했다.
오랜 꿈이었던 학문을 전공하게 되었지만 사춘기 시절보다 더 극심한 내적 방황을 겪느라 어중간하게 공부와 담을 쌓았던 나는 휴학과 모자란 졸업 기준 학점 때문에 학교를 1년 더 다녔다. 학부 때 공부 안 하던 애들이 뒤늦게 공부에 재미 붙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대학원에 가서 진짜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서울대생의 유일한 장점, 과외로 학비를 벌 수 있었지만 대학시절 내내 했던 과외와 이별하고 싶었다. 2년 정도 회사에서 바짝 일하고 대학원에 들어가자는 계획을 세웠다. 지금이나 그때나 철이 없었다. 4년제 대학, 그것도 소위 ‘명문’이라 불리는 대학을 졸업하면 성적은 보지도 않고 데려간다던 시기는 이미 전설로만 존재하던 때였다. 지원했던 모든 대기업에서 서류전형에 탈락하고 합격한 곳은 어처구니없게도 지상파 방송기자였다.
연수가 끝나고 수습기자 생활을 시작한 2008년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해였다. 그의 취임과 함께 내가 다니던 방송사는 극심한 갈등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파업과 제작거부가 해마다 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막아내고 싶었던 미디어법이 통과되면서 종편의 탄생을 예고했다. 원래 목표는 2년이었으나 어쩌다 보니 약 5년을 근무하고 퇴사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304명의 무고한 목숨이 바닷속에 잠기고 있을 때, 나는 NGO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1년 뒤, IT회사에 입사해 지금은 MD로 일하고 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다보면 내가 얼마나 다이내믹한 세상의 한중간에 서있는지 잊곤 한다. 2017년, 서른세살이 되기까지 내가 지나온 역사는 작거나 크게 몇 번이나 챕터를 바꿔왔다. 그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은 공교롭게도 대부분 내가 상급학교를 진학하거나 취직하는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과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또 딱히 직격탄을 맞은 건 아니었다. IMF 외환위기 당시 나는 경제활동 인구가 아니었고, 대학생 시절엔 취직이 쉽진 않아도 ‘삼포세대’라는 말은 없던 때였다. 바뀌는 시대의 어중간함을 타고 지내온 시간. ‘너무 힘들었다’ 말하기도 머쓱하고 ‘진짜 잘 나갔지’ 말하기는 더 애매하다.
이도 저도 아닌, 어디에도 끼지 못한다는 느낌은 어렸을 땐 ‘빠른 년생’의 애매함 정도의 불편함이었지만 사람들이 ‘어른’이라고 부르는 나이에 들어서면서 불편함의 깊이는 더욱 깊어지고 때론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국민학교를 그저 국민학교라고만 불러도 됐던 몇 살 위 선배들의 생각은 때로 너무 고루하고 꼰대처럼 느껴졌지만, 한편 국민학교라는 말을 써본 적 없는 어린 후배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때로 낯설고 ‘쟤네 너무 이기적인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학 진학과 취업이 꿈꾸거나 원하던 방향과 완전히 달랐던 것도 내가 어떤 곳에도 충분히 녹아들지 못한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든 건지 모르겠다. 간절함이 없어서 간절함으로 조직에 투신하는 이들의 욕심과 의욕을 따라잡지 못했고, 되려 그 속에서 벌어지는 모순들이 크게 다가온 것 같다.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는 내 또래들이 많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전자라면 ‘너도 그랬니’라는 말을 걸고 싶고, 후자라면 그런 거칠거칠함으로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은 나이가 비로소 된 것 같다. 33살. 이제 더 이상 어리지도, 그렇다고 많지도 않은 어중간하게 딱 낀 나이이기에 더더욱.
구시대에 태어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과도기에 30대 초반, 여자의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이제 이런 고백을 하고 싶은 거다. 사실, 어제까지 국민학교였던 우리 학교를 오늘부터 느닷없이 초등학교라 부르는 게 어색하고 힘들었다고. (멋없지만 소심한 마음에 굳이 사족을 달자면, 그렇게 명칭을 바꾼 것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