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떠난 기차여행-4

by Far away from

"저녁엔 무엇을 먹을까?"

"피자"

습관적으로 피자를 말하는 민재에게 되묻는다.

"민재 점심에도 스테이크 같은 거 먹었는데 저녁도 인스턴트 먹으려고? 저녁엔 밥을 먹는 게 낫지 않을까?"

"아 그렇지."

만담 하듯 대화하고 해운대 시장을 걷는다. 꼼장어. 돼지국밥. 각종 횟집들..

‘민재와 저녁 먹기는 적당한 곳이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돌아서려 할 때 민재가 허름한 식당을 가리킨다.

"아빠. 나 여기서 비빔밥 먹을래"

테이블이 두서너 개 있는 시골 장터 식당.

"어? 민재야 여긴 좀.."

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민재는 성큼성큼 들어가고 있다.

'누굴 닮아 이리 저돌적이지?'

가자마자 네댓 명의 아주머니들은 마치 이방인을 보듯 신기해 하는 표정으로 우릴 쳐다본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와 이 나이 또래의 아들 둘이 다니는 모습도 신기했을 것이며 그런 부자가 자신들의 식당을 들어오는 모습 또한 흔한 모습은 아니었으리라.

"하이고 예쁘게도 생겼네. 몇 살이고?"

"여덟 살이요~"

민재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또박또박 말을 곧잘 한다.

"어디 보자.. 아빠는 안 닮았네~"

"네. 엄마 닮았어요"

그 말에 아주머니들은 박장대소가 터진다. 그리고 나와 아들을 다 같이 둘러싸서 번갈아 가며 본다.

뭐지.. 이 분위기는..

난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를 상황에서 차가운 물만 들이켠다.

하지만 그 상황이 결코 기분 나쁘지 않다.

나는 문득 어렸을 적 고향의 시장 한가운데 있던 순댓국집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순댓국을 전문으로 팔던 집이라 거칠어 보이는 아저씨들이 항상 가게 안에 가득했던..

난 그곳에서 순대를 많이 사 먹었다.

거친 아저씨들을 상대하면서도 도도하고 유독 웃음이 많이 없었던 그 아주머니에게 호기심을 느껴 나는 내가 애가 아니라면 아주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사시는지 말을 건네 보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만약에 그런 말을 실제로 건네었다면 오지랖도 그런 오지랖이 없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말을 건네었다면 어떤 대답을 하셨을지 궁금하기도 한 그런 기억.

비빔밥과 된장찌개를 다 먹고 민재가 계산한다며 씩씩하게 내게 돈을 받아서 간다. 그런 환대를 받는 분위기가 나름대로 기분 좋은 것 같아 보이는 민재.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나 혼자라면. 혹은 내가 주도해서 갔다면 결코 가지 않았을 그 음식점이 더욱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 식당의 벽엔 싸구려 다이어리를 한 장 찢어 작성한 편지 한 통이 액자에 걸려있었다.

'병든 노인에게 삶의 희망을 주고 다시금 건강을 찾게 해 준 식당에 감사한다. 이곳의 추어탕을 먹고 건강을 회복한 것 같아 감사의 사례로 내가 가진 생필품 몇 개를 보낸다..'

대략 이런 내용인 편지에서 그 사람의 삶이 오롯이 전부 보이는 듯했다.

현재 가진 것을 감사의 표시로 전하고픈 마음.. 질이 그리 좋지 않은 종이에 쓴 한 장의 편지와 자신이 가진 몇 가지 안 되는 것 중 새것이라 생각되는 생필품 몇 조각을 전하는 마음. 그것은 타인이 가진 그 어떤 명품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채 식당 한 켠 액자에 자랑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오늘 민재에게 또 한 가지를 얻었다.

그의 선택으로 인한 가르침.

‘결코 충만한 만족감과 성취는 계획된 시나리오에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구나..’

실패할만한 경험은 나 혼자 있을 때만 하고자 한 내 마음을 돌아보며 민재가 이제는 부양해야 하는 ‘아들’이 아닌 '친구'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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