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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시

바보

by Far away from

내 삶에 닥친 위기를 해쳐나가기 위해

잠깐 바보인 척 살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많은 위기들은 나로 하여금

바보로 살기를 강요했고

잊거나 덜어내지 않으면 지독한 고통으로 내게 벌을 주었다


소중한 존재. 지켜야 할 것들을 저울질하며

나 자신을 재료로 넣어 주술을 외운다


어쩌면 사라져 버릴 재료로써의 나는

때론 괜찮은 향을 냈다가 때론 지독한 향을 낸다


덜어내어 바보인 걸까?

바보이기 위해 덜어내는 걸까?


한땐 바르고 정의롭고 착하게 살면

그에 맞는 대우와 지위가 보장될 것이라 믿었다


그저 한가로운 벼룩시장 같은 이야기

세상에 각각의 정의는 넘쳐나지만

진정 정의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인간이기 때문에

상처받을 준비를 하고

아픔을 감내할 준비를 하고

원래 내게 없었던 것들을 덜어낼 준비를 한다


같은 시간 같은 거리를 걷는 사람들

오래전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바보 같게도

바보가 되어버린 지금

낯익은 거리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그리워한다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그들은

상상 속에서 뿌옇게 흐려지며

기억 속에서조차 손을 잡아주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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