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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r away from Jul 10. 2022

기차여행 5-2

영원한 친구

6학년의 민재. 이제 내년부터는 중학생이 될 민재. 예전의 민재의 모습을 생각하면 매일매일이 놀라운 변화의 연속이지만 더 큰 변화를 감당해야 하는 나로서는 변해가는 민재의 모습보다도 갖춰야 할 내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 더 큰 그릇을 준비하여. 가끔은 민재 옆에 있는 내 모습이 초라하거나 작아질 수 있을지라도.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만은 민재의 본질을 봐주어야 한다.


키가 많이 크고 걸음걸이가 빨라진 민재는 걷다 보면 어느새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다. 중간에 갈 길을 몰라서 멈추지 않는다면 까마득히 멀어질 것 같다.


‘전엔 항상 내 손 잡고 내 옆에서 붙어 다녔는데…’


조금 야속하기도 하지만 이내 생각을 떨쳐버린다. 전엔 손을 잡으면 작고 힘이 없어 꽉 쥐며 장난을 치곤 했었는데.. 이젠 손을 잡으면 다 크고 뼈가 단단한 남자의 손이다. 그래도 아직 가끔 뒤돌아서 손을 잡아주는 민재. 이게 고마운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고맙다.


민재와 부산에 도착하여 초량역에 있는 과학체험관에 간다. 아마 4년 전쯤. 그러니까 민재가 2학년 때 왔던 곳. 어른의 4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닐지 몰라도 아이들의 4년은 무척 긴 시간이다. 완전한 어린아이가 청소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입장 후 체험을 선택하는 게 있었는데 민재가 할 수 있는 체험은 없었다. 대부분 초등 저학년들이 할 수 있는 체험들.. 그곳에 방문한 아이들 중에서도 민재가 제일 크다.


‘아주 어린아이 었는데…’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한 느낌. 코로나가 과거와 현재를 단절시킨 시간은 생각보다도 무척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체험 안내원들도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느낌이다. 큰 아이와 같이 다니니 그런 것일까? 그냥 내 느낌일까. 민재와 나는 신나게 농담을 해가며 각종 체험들을 하기 시작한다. 민재도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처음 오는 것처럼 재미있게 즐겨준다.


체험을 끝내고 지하철을 타고 해운대로 이동한다. 이젠 내 얼굴까지 불쑥 솟아있는 민재의 키. 전엔 지하철 타면 힘들다고 앉고 싶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어른들이 양보해주시곤 했었는데.. 이젠 어른들에게 민재가 양보해 줘야 할 정도로 자랐다.


해운대 역에 내려서 방탈출 카페에 간다. 해운대에는 하나밖에 없는 것 같은 방탈출 카페엔 여자 대학생인 듯 한 아이 세명이 있었다. 우리가 한 테마는 폴아웃 프로젝트라는 테마. 거기서 가장 쉬운 테마였지만 우리가 그리 고수는 아니었으므로 선택하여 성공 탈출을 기원한다. 이곳의 방식은 다른 방탈출 카페와는 달리 직원이 관여를 전혀 하지 않고 처음에 방의 난이도별로 도움 능력을 일정 개수만큼 획득하여 방이 들어가서 어려울 때 사용하는 시스템이었다. 우리 테마의 난이도는 높지 않은 편이라 3개를 얻을 수 있었는데 방의 문제 개수와 난이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학자와, 시간 5분 추가 혹은 1개의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의 지배자,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 힌트 중 하나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복제라는 능력을 선택했다. 결과는 대만족! 시간을 무려 8분여나 남기고 기어서 탈출할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나와서 사진 찍고 하이파이브하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호텔로 향한다. 전과는 달리 민재의 실력이 무척이나 늘었다. 중요할 때마다 빛을 발휘한 민재의 침착함과 센스. 멋있었다.


체크인하고 해운대 바다로 나간다. 튜브 두 개를 빌려 물놀이를 했는데 예전처럼 오래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항상 했던 모래놀이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이 들어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게 된 것뿐인데.. 나에게 많은 영감을 줬던 민재와의 모래놀이라서 그런지 나는 호텔로 돌아오는 동안 내 마음속 많은 감정들을 조금 정리해야만 했다.


숙소에 와서 씻고 밥을 먹으러 나간다. 오면 항상 생각나는 금수복국. 2만 원짜리 까치 복국을 2개 시켰는데 민재가 복어만 먹고 국물은 먹지 않는다. 시키는 대로 너무 식초를 많이 넣었더니 맛이 이상해져 버렸다.. 가끔은 소신대로 살아도 좋은 세상이란 생각을 했다.


민재와 교촌치킨을 사서 숙소로 향한다.


‘민재야 거리공연 안 봐도 돼?’


‘응. 숙소 가서 야구 보자’


민재는 피곤한지 전부터 보고 싶어 했던 거리공연을 마다한다. 또 하나 익숙한 것을 건너뛴다.


숙소로 가서 교촌 먹으며 야구 볼 생각에 서로 들뜬다. 익숙한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한다. 삶과 인생이 그러하듯이. 보내고 맞이한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반복해야 할 그 행위들..


야구 보며 뒹굴뒹굴… 민재는 피곤했는지 눈을 감고 이불을 돌돌 만다. 어린이와 큰 이의 경계선. 그 경계를 정한 이는 없겠지만.. 규정짓기 좋아하는 어른들을 항상 어떤 존재를 어떤 범주에 넣으려 한다. 세상에 의해 끊임없이 소속되어야만 할 그 수많은 범주들을 나는 적용하지 않으려 한다. 나만큼은 편견 없이.. 널 규정짓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냥 사랑스러운 나의 아들로… 그런 나의 아들이 평생 건강하며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다. 무엇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네가 내게 준 많은 느낌과 소중한 감정들 그 모든 것 하나 퇴색되지 않게.. 난 너를 굳게 기억하고, 믿는 마음으로 바라보며 사랑해 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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