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죽음과 삶
“내는 말이다. 부모님 돌아가실 때 화환으로 쫙 도배를 해놓는 게 꿈이대이. 그러려면 부지런히 사람들 만나고, 돈 마이 벌고. 마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나?”
노가다 선배 한들선이 자주 했던 말이다.
의외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감명 깊게 봤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온다. 아이유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동네 아저씨는 자신의 로망이 그것이었다며 모아놓은 비상금으로 화환들을 잔뜩 사다가 장례식장 벽면에 도배를 해놓고 그렇게 뿌듯해한다. 결혼식이나 각종 행사에 사람들 많이 오는 것. 가족의 장례식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 등. 남자들에게 그런 ‘보이는 것’들은 성공의 상징처럼 생각되는 것 같다.
나는 또 누군가의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먹고 있다. 나이가 한 살 두 살 더 먹으면서 결혼식보다 장례식장에 참석하는 횟수가 더 많아졌다.
“나만 믿어요~ 언제 내 선에서 해결 못한 일 있었나요?”
고인이 생전에 나와 함께 일할 때 자주 했던 말이다. 고인은 나의 협력업체에서 안전관리를 담당했다. 항상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발 벗고 해결했고, 힘든 일이 있으면 진심으로 상담해 주며 친형처럼 다정하고 진심 어린 사람이었다. 회사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계약관계에 묶인 사람들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만나면 그 인연이 더 귀하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런 그도 개인사의 고독과 아픔이 있었나 보다. 생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며,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하루하루 바삐 살아가던 그분이.. 죽어서는 가족을 찾지 못해 무연고자로 시신이 처리된다고 한다. 상주 없는 장례식장에서 그분의 영정사진을 차마 쳐다보지를 못하겠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함께 부대끼며 일했던 조쌩까 소장과, 문등이 대리도 만났지만 잠시 만나고 스쳐간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지만 또 남은 사람들은 시간을 쪼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잠시 스쳐가고 사람의 죽음마저 절차로 남겨두고 바삐 쳇바퀴를 돌리고 또 돌린다.
추억은 남녀 사이에만 남는 것은 아니다. 고인이 된 이쌍수 과장님과 함께 지나갔던 일터의 곳곳에서 그분의 표정과 행동들이 보인다. 서로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했을 때는 보이지도 않던 모습들이 왜 떠나고 난 다음에 보이는 걸까? 사람이란 잊으려 하면 생각나고, 생각하려 하면 오히려 잊게 된다. 노가다는 특히나 더 많은 고인과 끝난 인연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김거성 과장님이 자주 부르시던 ‘별이진다네’ 노래가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것 같다.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별은 그저 별 일 뿐이야
모두들 내게 말하지만
오늘도 별이 진다네
아름다운 나의 별 하나
별이 지면 하늘도 슬퍼
이렇게 비만 내리는거야
나의 가슴속에 젖어오는 그대 그리움만이
이 밤도 저 비되어 나를 또 울리고
아름다웠던 우리 옛일을 생각해보면
나의 애타는 사랑 돌아올 것 같은데
나의 꿈은 사라져가고 슬픔만이 깊어가는데
나의 별은 사라지고 어둠만이 짙어가는데
“앵앵앵~~ 뭐 하는 거야 앵앵앵~~ 그런 게 어딨어 앵앵앵~~”
통합된 노가다 조직의 홍앵앵수석님.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높은 주파수의 톤 때문에 같은 사무실을 쓰는 많은 사람들이 고막 통증을 호소한다. 말이 엄청 빠르고 통화도 자주 하는 탓에 사무실에 있을 땐 나머지 사람들의 업무효율이 저하되는 효과가 있어서 많은 주변 직원들의 컴퓨터 마우스가 정지되고 헛기침 소리가 늘어난다. 본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 페이스대로 살아간다.
그런 홍앵앵 수석님도 삶의 애환과 한이 있겠지? 해외에 있던 시절이 그리운지 계속 해외에서 일하던 때를 얘기하신다.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도 수단에서 근무하던 때,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있었던 때, 일본에서 있었던 때에 대해 자주 얘기하곤 하셨다. 남자들에게 그런 해외의 기억들이 큰 자부심으로 남는 것일까? 난 아직 해외근무를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들을 보면 그냥 아버지가 생각난다.
홍앵앵 수석님이 아버지 연배는 아니지만, 보고 있으면 난 마음이 푸근해진다. 가끔 술잔을 기울일 때 정년까지 2~3년밖에 안 남았다며 씁쓸한 함박웃음을 지으시는 모습이 정겹다. 그 어떤 과정과 결과에도 의연하고 떳떳하고 묵묵히 주어진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진정한 가장과 진정한 노가다 장년의 모습인 것 같다. 난 언제쯤 저런 여유와 의연한 모습을 갖게 될까? 하긴 누군가의 죽음에도 서서히 무뎌지는 모습이 노가다 고참이 되어가고 있는 모습인 걸까?
가끔은 어른이 된다는 것. 고참이 된다는 것. 고수가 된다는 것에 대해 잘 모르겠다. 잘 몰랐지만 의욕이 넘치고 열정이 넘쳤던 어린 시절. 잘 아는 것이 많지만 많은 것에 무기력하고 무감각해지는 장년시절. 그 어떤 것이 ‘더 낫다’라고 칭해질 수 있을까?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소비하는 젊은 날과, 더 적게 먹고 더 적게 소비하는 나이 든 나.
이것저것 다 잘 모르겠지만 난 술 한잔 먹고 집에 데려다 드릴 때 연신 고맙다고 하시며 깨끗한 웃음 지어주시던 홍앵앵 수석님이 좋다. 남들이 앵앵거린다고 귀를 막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