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의 식사
“별아~ 니 또 102동 옥상에 올라가 있나? 기다려리. 내 금세 갈게~”
어느덧 기사 4명이 102동 옥상에 집합했다. 한들선과 나. 김갈맥 사원, 김선량사원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들선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 모였다. 왜 위로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모였던 것 같다. 기사 4 총사 중 나 이하의 김갈맥, 김선량 사원이 더 학대당하고 한은 많았는데.. 왜 위로받았던 시간보다 위로해줬던 시간들만 생각나는 걸까?
“아이. 윤행그 과장님이 글쎄 나보고 일을 그딴 식으로 하냐고 핀잔을 주는기라. 김기만 대리님한테 싫은 소리 한번 했다고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아야겠나? 맞나? 아이가? 나 정도면 충분히 양보했다 아이가?”
김기만 대리의 부사수였던 김갈맥 사원은 그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한 채 난감해했고, 건축 공종과 다르게 전체를 총괄해야 하는 설비와 전기 공종의 나와 김선량 사원은 그나마 맞장구라도 쳐주며 달래줬던 것 같다.
“가자 마. 오늘 일도 안되고 함바집 가서 국수나 말아먹재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오후 3시 남짓의 시간. 함바집에는 막걸리를 기울이고 있는 작업자들과 각종 간식을 챙겨 먹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기사 나부랭이라서 근무시간에 술잔을 기울일 수는 없었지만, 고참들은 알아서 짱박혀서 각자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시간.
“사장님 여기 국수 4개 말아주이소!”
우리는 국수 한 그릇을 꾸역꾸역 뱃속에 밀어 넣으며 설움을 삼키고, 현재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삼키고, 삼킨 것들을 꾹꾹 누르며 지금과 다를 미래를 다짐한다.
숙소생활 하는 우리는 저녁때면 퇘랑이 앞다리살집에 자주 모이곤 했다. 돈이 없었던 우리에겐 고기가 싸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집만큼 좋은 집이 없었다. 돼지비계로 자작하게 익힌 콩나물과 김치를 쌈에 올려 앞다리살 두 점을 올리고 마늘과 함께 싸 먹으면 푸짐한 느낌이 이를 데 없었다. 먹고 먹어도 배고프던 시절. 같은 곳에서 또 쌈을 싸 먹고 술잔을 기울이고 기울여도 배고픔이 가시지 않던 시절. 그 배고픔과 허기짐은 어쩌면 몸의 배고픔이 아니라 마음의 배고픔이 아니었을까?
“별아 니 식권 좀 땡긴다? 괜찮지?”
한도 많고 설움도 많은 김설움 책임님. 대한민국 최고의 깡촌인 영양 출신이라 잡초처럼 질기고 억새지만 내면은 여리고 여리다. 5~6년도 더 지난 직장 생활하면서 느꼈던 설움을 기회만 나면 토로해서 내 귀를 힘들게 한다. 겉으로 봐서는 말도 많고 의견도 세서 강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내면은 여리다. 각자 다른 직장에 다니다가 이곳에 모인 사람들. 같은 곳에 있지만 성향도 다르고 출신도 다르고 경력도 다르다. 하지만 매일 우린 같은 직장에서 같은 밥을 먹고.. 나의 일용할 양식인 식권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김설움 책임님께 헌납한다.
예전엔 각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밥을 먹곤 했었는데 지금은 식권이란 제도가 있어서 하루의 대부분의 식사를 식권으로 해결할 수 있다. 주머니에서 쌈짓돈을 꺼내어 계산하는 감성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아 쓸쓸하다. 하지만 과거와 비슷하게 식권 품앗이를 하며 오늘도 주린 배를 채운다. 하루 세끼의 식사와 중간중간에 먹는 음료와 간식. 가끔가다 한잔 두 잔 채우는 술잔과 그 앞에 차려진 안주. 그것들을 연료 삼아 난 또 하루하루 움직이기 싫은 몸을 움직인다.
“별아 배고픈데 뭐 먹을 것 좀 없냐?”
항상 배고픈 심일꾼 수석님. 진짜 회사일을 혼자 다 할 것처럼 일감을 먹어치우는 포식자다.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로 일을 열심히 하는 탓에 다양한 의견과 캐릭터를 가진 사람들 모두 그분에 대한 평가는 한결같다. 그렇게 모든 사람을 대동단결 시킬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일 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사회생활을 하며 처음 만나고, 앞으로도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유일무이한 캐릭터. 술 담배도 하지 않아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은 먹는 것 밖에 없어서 배가 웬만한 쌍둥이를 밴 임산부 저리 가라다. 동네 형 같은 서글서글한 인상이지만 일을 할 때는 자기편 남의 편의 구분이 확실해서 가끔은 서운할 때도 많지만.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라서 괜찮다.
그분에게 먹을 것이란 생존 이상의 스트레스 해소 수단. 각자 의미와 범위는 다르지만 노가다의 식사와 식량은 보통사람의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보다 원초적이고 보다 간절한 생존의 수단. 그렇게 밀고 당기며 먹이고 먹고 먹을 것을 위해 또 벌고 움직이고 땀 흘린다.
시대는 지났지만 먹을 것이란 생존 그 자체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