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게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새로운 것은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내게 익숙한 매거진들에 글을 가끔씩 욱여넣다가 새로운 매거진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에 더하기 버튼을 클릭한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간단한 것 하나도 진심으로 행하기 어려웠던 나의 특성상 내 인생을 두루 이어 줄 무언가 스토리가 필요했나 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매거진의 취지는 무척이나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매거진에는 문득문득 떠오르는 어떤 현상이나 단어나 문장들. 가끔씩 떠오르는 아무것도 아닌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척 광범위하게 파생되는 그런 주제들에 관한 글을 쓰려고 한다. 그 어떤 주제가 될 수도 있고, 무척 가볍게 접근하여 길어질 수도, 장황하게 접근하여 짧게 끝나버릴 수도 있다. 긴장감이 큰 나에게 편안한 가운데 글쓰기와 상상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매거진을 시작하게 된다.
첫 번째 주제는 내게 상상력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상상력은 어떻게 보면 내 삶의 근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향형이던 나로서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고, 교실에서 시선이 편한 곳의 사물을 응시하며 쉬는 시간 내내 상상만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는 이상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정적인 내 시선과는 달리 내 머릿속은 세상 구석구석을 헤매고 우주 곳곳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상상력이란 특별한 주제를 가지지도 않았고, 기승전결에 맞춰 생각해야 하지도 않았고, 서론 본론 결론이나 6하원칙을 따라야 하지도 않았다. 나를 구속하는 수많은 제도와 사람들, 그리고 내 몸을 편치 않게 하는 각종 고통과 아픔도 초월하여 그 어떤 속박에서도 자유로운 곳에 놓인 것이 바로 나의 상상력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마냥 좋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나의 상상력은 언제부턴가 나를 불편하게 하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상상과 망상으로 나 자신을 괴롭히곤 했고, 각종 불안과 그 불안과 이어지는 신체화 증상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가장 믿을만한 공간이었던 상상력의 공간이 나를 위협하는 공간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상상력은 때로는 산만하기도 했다. 꼭 시험기간만 되면 집중해야 할 시간에 온갖 상상들이 마치 좀비처럼 떠올라 공부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시끄러운 데서는 공부가 되지 않고, 조용한 공간이나 조용한 밤시간이 되면 상상력의 잡음 때문에 공부가 되지 않았다. 공부라는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관점에서의 잡음이라 표현한 것이지 실은 상상하는 시간이 싫지 않았다. 마치 들판 곳곳에 펼쳐져있는 들꽃처럼..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지만 들판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잡초들처럼..
내게 상상력이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 나를 위태롭게 유지시키고 있는 내 정신의 뼈라고 칭할 수 있겠다. 지금 또 이런 밤시간에, 상처받은 나를 편안히 숨 쉴 수 있게 해 준다.
거실에 얼마 전에 사놓은 왁스플라워가 있다. 대부분의 꽃들은 금방 시드는데, 이 꽃은 몇 주가 지나도록 아직 싱싱하다. 왁스플라워의 꽃말을 찾아보았다.
‘변덕쟁이’
키우는 방법을 찾아보니 햇볕을 자주 쬐어주고 과습 되지 않게 조심하라고 한다. 지난 몇 주동안 햇볕도 잘 쬐어주지 않았고, 꽃대를 물에 담가놓아 과습이 되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이러다가 얘에 대해 알고 나서 내일부터 햇볕을 쬐어주고 물에서 빼주면 금방이라도 시들어버릴 것만 같은 아이. 마치 나의 상상력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상상력도 변덕쟁이이다. 길을 알려주지도 않고 이거다 싶은 길로 들어서면 금방 이상한 길로 안내해 주곤 하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이 변덕쟁이이고, 변덕쟁이에게 매력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삶의 많은 것들이 맘대로 되지 않을 거라면.. 즐기자. 나는 나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상상력이란 변덕쟁이에게 또 나를 맡긴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그 매력적인 존재와의 동거는 아직도 ING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