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ar away from Jun 22. 2024

슬픔

항상 잘해야 하고

항상 옳아야 하고

항상 명분이 있어야 하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 해치려 하지 않고

평가하려 하지 않고

존재의 이유를 묻지 않는다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고여야 물이 흐르고

쌓여야 넘칠 텐데

고이고 쌓일 시간은 어디에서 인정받아야 하는 걸까?


비가 오는 풍경을 바라본다

사람들이 가득했던 공간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분무기로 뿌리듯 퍼져나가는 비와 빗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해가 가득했고 무더위가 당연했던 공간에

이제 비가 당연한 듯 자리 잡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은 없나 보다

내 유년기도

많은 시간을 거쳐 지금까지 왔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과거의 모든 기억들도

그리고 지금의 나까지

그냥 이렇게 살아서 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나 보다


산책 때마다 보이는 두꺼비가

보이지 않게 되면

그 어디에서도 이유를 물을 수 없는 것처럼


만남과 이별과 태어남과 나이 듦에

이유를 물을 수 없는 것처럼


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막연한 슬픔의 원천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용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