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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r away from Nov 16. 2024

낙엽

"자 이제 떨어질 준비를 해야 해"

줄기를 통해 나직한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 비에 아마도 우린 이별을 해야 할 거야"

일방적으로 들리는 목소리에 질문조차 던지지 못한다


'우린 그동안 수많은 비를 겪어왔잖아요. 태풍과 모진 바람도 함께 견뎌왔잖아요. 그런데도 이별하지 않았는데.. 이 적은 가을비에는 왜 이별을 해야 하죠?'


마음속에 담은 말을 채 밖으로 내뱉기도 전에

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잎이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


"즐거웠.. 행복했.."

희미하게 흐려지는 줄기에서 이어지는 말을 귀에 채 담기도 전에 태어나 처음 하는 낙하라는 경험을 치러내야 했다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시리고 아팠고, 때로는 병들고, 누군가의 공격을 견뎌내는 일도 스스로 해야 했다


봄부터 이어진 경험들이 이젠 꽤 익숙해졌다 생각이 들 무렵

잎은 낙하하는 가을을 맞이해야 했다


바람에 흩날려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동안

도로옆에선 장의차가 지나갔고

카시트에 아기를 앉히고 사랑스러운 얼굴로 장난을 치고 있는 패밀리카도 지나갔다

멀리 떨어진 곳에선 먹이를 찾아 서성이다가 로드킬 당해버린 고양이의 단말마 비명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이젠 혼자구나..'


잎은 혼자만의 가을을 맞이했다

두려웠지만 순간 자유로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플 거라 생각했던 착지의 순간은 가벼워진 몸 덕분인지 그리 아프지 않았다


푸르고 여린 잎사귀의 모습에서 푸석거리는 잎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자신이 낙엽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행히도 자신과 같은 처지의 다른 낙엽들이 옆에 쌓여있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것처럼.. 아무리 아득한 순간에도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은 존재했다.


바닥에 누워 이미 갠 하늘에 어두워지는 하늘의 별을 쳐다보았다

가을은.. 연결된 수많은 것들을 분리해 내는 계절..

찬란하게 아름답기도 하지만, 찬란하게 처절하기도 하다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공급받지 못한다는 불안감도.

처절한 배고픔도..

이젠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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