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Far away from Dec 20. 2024
"내가 왔다는 건 알리지 말아 주세요"
눈발이 말했다
"그냥 조용히 내렸다가
조용히 땅 속으로 스며들게요"
"누군가에게 보이려고 내리는 것은 아니에요"
"보이지 않는 사람은 보지 않아도 좋아요"
눈발은 무엇이 부끄러운지
무엇이 수줍고 당황스러운지
연신 얘기를 했다
"단지 추운 날씨와, 수증기를 가득 머금은 구름덕에 내리는 것뿐이에요.."
"단지 그것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눈발의 그 아무것도 아닌 얘기들이
나에게 의미 있게 들렸다
아마 나 또한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들이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기 때문일까?
눈발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눈발의 다짐대로
그냥 조용히 내리고 조용히 땅으로 흡수되었다
그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눈발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수줍은 눈발의 다짐대로..
하지만 난
눈발을 보았다
눈발을 본 이로써의 책임감을 느낀다
난 과연
무엇을 행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