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간절함

by Far away from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기를 쓰는 걸 즐겨했고, 시간 날 때마다 생각하고 생각한 바를 글로 옮겨 적는 걸 좋아했다. 상상 속에서 난 최고의 자유를 느꼈고, 그 희열을 글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 어떤 이유에서인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말을 하기보단 글로 표현하는 것을 즐겨했다. 말은 좀 더 직접적이고 자극적으로 감정을 전달할 수 있지만, 그만큼 오해를 사기도 쉽고, 가려서 해야 하기 때문에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이유는 사람을 대면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어색함이 어렸을 때부터 내겐 뼛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아토피가 심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의 특정부위를 쳐다보면 그곳에 또 피부가 터져 피가 나고 있는 걸까? 갈라지고 빨개져 보기 흉한가? 등의 피해의식이 먼저 작용하는 탓에 타인의 시선이 그리 달갑지 않은 유년기를 보낸 이유도 크게 작용할 것이다.


세상은 그 어떤 큰 결핍으로 인해 다른 면이 발전하기도 한다. 결핍이 없다면 두루두루 모가 난 부분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삶에 있어 유리하거나 세상을 잘 살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수많은 종류의 결핍들.. 하지만 난 그 결핍으로 인해 발전한 부분에 대해서 자랑하거나 내세울 마음은 없다. 그것은 또 다른 피해의식이 되어 오히려 역효과가 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내게 글쓰기는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나다운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도 많고, 남겨놓고 싶은 얘기들도 많다. 글쓰기는, 다른 대부분의 것들과 마찬가지로, 할 수 있는 조건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몸이 무척이나 아플 때는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생기지 않을 것이고, 행여 욕구가 생기더라도 긴박한 상황에 몰입된 상태에서의 글쓰기는 지극히 중립적일 수 없다. 하루하루, 시간 시간마다 생각나는 것들을 언제나 글로 옮겨놓고 싶지만, 제한된 상황들 때문에 쉽게 옮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글 쓰는 상황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다양한 이야기나 주제보단 비슷한 주제나 이야기로 흘러갈 확률이 높다.


그 때문에 생각나는 다른 이야기를 물 흐르듯이 쓸 수 있는 상황의 간절함이 무척 크다. 용기를 내서 내게 자신의 과거의 아픔과 상처 등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친구의 마음처럼 무척이나 절박하게 내 이야기를 흰색 바탕 위에 새겨놓고 싶다. 자기만족으로 위안을 삼지만 결국 나의 소통방식이란 것은 미지의 주파수를 찾아 무전을 띄우는 모험 같은 것인 것 같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 주었으면 좋겠고, 그런 화제들을 가지고 또 한 겹 자신의 옷을 벗어 나에게 이야기를 건네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주황색 가로등이 켜져 창가로 주황색 빛이 비치는 방에 불을 끄고 누워 라디오를 듣기를 즐겨했다. 어느 정도 추운 날 정도면 항상 창문을 열고 옷을 따뜻하게 입고 누워있던 것 같다. 밖에서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들려오면 저 사람은 어떤 사람 일까? 궁금해하고, 발걸음이 빠른 아이들 소리를 들으면 급하게 어디를 가는 것일까? 궁금했고, 술 취한 아저씨의 느린 걸음 소리를 들을 때면 저 아저씨는 무슨 고민이 있는 것일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었다. 그 어떤 작은 외부의 자극 하나하나도 내겐 상상거리였고, 그런 식으로 혼자 노는 것이라면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다. 그렇게 나 자신 안에 세상을 그려놓고 혼자면 돼.. 혼자면 충분해..라고 항상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던 시간들. 하지만 그 시간들은 반대로, 누군가와 간절히 이야기하고 싶었던 시간인지도 모른다.


하루는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내 머리카락이 언제 이렇게 하얘졌는지 느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도 그렇게 흘러간다. 예전에는 시간을 내가 사용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이제는 시간 안에 내가 동동 떠다니는 기분이 든다. 마치 무언가에 채찍질당하는 당나귀처럼. 하지만 내가 정신없이 걷고 있는 것을 그 누구도 잘한다 말해주지 않는다. 단지 채찍과 온 힘을 다해 걷는 나만 있을 뿐. 그것에 대한 의미나 뜻은 그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다.


글쓰기의 간절함은 시간에 대한 간절함과 동일하다. 그 어떤 노래를 들으며, 그 어떤 생각을 하며, 이 시간을 붙잡아 내 과거 현재 미래를 두루 생각해 좋은 글을 남겨 놓을 것인지에 대한 간절함은 아련하다. 아련히 저려오는 팔을 주무르듯 살살 주물러 누에의 몸속에서 실타래를 빼어 내듯이 글을 써 내려간다. 글을 쓰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 난 자유롭고 편안해진다.


세상 속에 수많은 모순과, 잘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의 논리,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어떤 라이프플랜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회사에서 나는 어떻게 될 것인지, 미래를 위해 내가 투자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아빠, 남편, 아들, 회사에서의 입장에서 각각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등등의 사슬을 벗어던지고 그냥 본연의 나대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


별것 아닌 이야기라도 그냥 보고 공감하고 피식 웃으며 나로 만든 음료를 기꺼이 당신의 몸속으로 흡수해 또 하루를 살아갈 생명체를 향해 우주 속에 주파수를 날리며 또 늦은 새벽과 이른 아침을 맞을 준비를 한다.

IMG_1669.JPG 아주 오래전 해가 달에 가려지는 일식.. 아주 흐리고 비가 오지 않은 날이었던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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