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창가에 지는 새벽_3

희수의 집

by Far away from

햇살이 눈부신 아침..

투명한 햇살은 아침이 주는 특유의 넉넉한 기분으로 길을 나설 수 있게 한다.

지난밤 꿈에서 나왔던 소녀.

누구였을까?


술을 먹지 않았는데도 깨질듯한 두통이 숙취처럼 밀려와 잠시 인상을 찌푸린다.

돌 담벼락 옆에서 놀고 있던 꼬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지난밤 꿈에 나왔던 7살 자아와 겹쳐져 동공을 확장시킨다.


"아저씨 공좀 차주세요~!"


한 남자아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공을 차 준다....







색색깔의 커다란 비눗방울이 가득한 몽환적인 공간.

그 공간에서 무엇을 디디고 뛰는지도 모르게 한참을 뛰다 보니 앞에 그 아이가 보인다.

눈이 큰 아이..

절뚝거리는 다리로 빨리 달리지 못해 금방 나에게 따라 잡힌다.


"얘!! 어딜 그렇게 뛰어가니?"


숨을 헉헉거리며 그 아이를 돌려 세운 뒤 말을 건다.

겁에 질린 표정.. 그때 보았던 천진난만한 모습과는 정 반대되는 표정으로 식은땀을 가득 흘리고 있다.


"도망.. 가고 있어.."


"도망이라고?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그 아이의 동공은 확장되어 있었고, 이국적인 색깔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현실.. 현실의 전부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나랑.. 같이 가줄래?"


그 아이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듯했고, 지나치게 겁에 질려있었고, 나는 그런 그 아이에게 그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저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그 애가 좀 더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곳까지 같이 뛰어가 주는 것뿐..


한참을 달리다가 낯선 바닷가에 다 달았다. 인적을 찾아볼 수 없는 그 바닷가의 모래는 하얗게 햇살에 부서지고 있었고, 파도는 잔잔했다. 그 아이는 조금 안정을 찾은 듯 먼 곳을 응시하며 모래 위에 털석 주저앉는다.


한참을 말이 없이 있었다. 파도와 햇살과 모래와 갈매기 소리.. 그 모든 것들이 온몸에 흠뻑 젖어들고 난 후에서야 이내 눈이 큰 아이는 입을 뗀다.


"넌 이름이 뭐니?"


아까와는 달리 안정되고 자신감 있는 말투와 표정.. 이 아이에겐 인격이 몇 개쯤 있는 걸까? 아니면 극단적인 이중적인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삶을 살았던 것일까..


"내 이름은 네모야."


조금은 부끄러운 듯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 엄마가 네모의 꿈이란 노래를 너무 좋아하셔서.. 그래서 네모라고 지었대.."


"훗.. 설명은 안 해도 돼. 왜 그런지. 무슨 이유 때문에 우리가 만나게 되었는지. 네가 왜 이렇게 외로워 보이는지..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돼.."


난 그 아이가 그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 궁금했지만 그렇게 말해주는 것에 대해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관계가 주는 그 어떤 피곤함이 그 아이에게선 느껴지지 않는다. 나의 그 어떤 것도 다 포용해 줄 것 같은 기분..


모든 것이 잔잔한 평화로운 풍경 저 멀리 선 여러 마리의 갈매기들이 물고기 하나로 싸움이 붙은 듯 서로를 견제하며 싸우고 있다. 육지 안쪽에선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듯한 통 콘크리트 건물의 창가엔 반투명 하얀색 커튼이 나풀나풀 날리고 있었고, 그 안에선 젊은 연인이 키스하는 실루엣이 언뜻 보인다.


같은 것들을 보며 아무 말 없이 앉아있던 7세의 우리. 천진난만해야 하는 그 나이의 우리는 놀아본 적도 없는 아이들처럼 상념에 빠져 그렇게 몇 시간이나 앉아있었고 그렇게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이제 가야겠다.."


조용하지만 어색하지 않았던 공기를 깨며 그 아이가 말했다.


"그래.."


그 아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이야기한다.


"나.. 쫌 무서운데.. 데려다 줄래?"


밝고 명랑했던 표정은 무엇이 두려운지 금세 어두워진다.


"그래"


대답을 하고 해변가를 나오자 다시 커다란 비눗방울들이 가득한 몽환적인 길이 나온다. 그 길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를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그 아이의 집에 다 달았다.


"다 왔어.. 이제 가도 좋아.. 오늘 즐거웠어.. 잘 가.."


무섭고 쓸쓸해 보이는 그 아이의 표정을 보니 왠지 모르게 안타깝다. 하지만 어린 우리로썬 집에 돌아가야 하는 저녁시간을 거부할 수 있는 그 어떤 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아이가 들어가고 발걸음을 돌린다. 한두 발자국 갔을까? 안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고 어른들의 고함소리도 들린다.. 그리고.. 그 아이의 비명소리도 들린다.


나는 정신없이 그 집으로 달려가 문을 연다.


낯선 풍경.. 그 아이를 짓누르고 있던 피아노.. 건물 천정에서 떨어지는 짐승의 가죽. 집이 무너질듯한 진동이 일어나고 희수는 나를 보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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