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의 독백
잠이 드는 시간은 두가지를 뜻한다.
축복의 시간
슬픔의 시간
잠이들때의 난 연속성있는 기억이 단절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었다.
하지만 계속 잠이 들고.. 좋은 꿈을 꾸고 몸의 피로가 풀리는 것도 느끼면서 그 두려움은 점차 무뎌진다.
마치 우주가 내 한 몸 속에 녹아있듯이.. 삶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생성과 소멸을 경험하며, 그 삶은 '하루'라는 소단위로 분류되어 그 안에서도 생성과 소멸을 한다.
지독한 감기가 떨어지지 않는다.
마치 꿈에서도 감기를 앓았던 것처럼 지긋지긋하다.
주방으로 가서 냉기와 온기를 동시에 머금은 물을 한잔 들이킨다.
아주 차갑거나, 아주 뜨겁지 않은것이 지금의 세상사람들과 달리 나와 비슷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세상에 큰 기대를 하는 편이 아니었다.
큰 희망이나 기대를 하고 살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현상들에 점점 담담해지던 때에 불현듯 꿈속에서 나타났던 그 아이. 그 존재는 가히 신비로웠고, 고요히 흐르던 내 수면위에 파장을 일으켰다. 그 신비로움은 나와 비슷하며 다르고 다르지만 비슷한.. 내적갈등과 상황적 요인들. 나는 나로 인해 학대를 받고 있는 듯했고, 그 아이는 타인으로 인해 학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공통적인것은 나는 나를 괴롭히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 아이는 자신을 괴롭히는 타인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호숫가에 몽환적인 상고대가 피어오르고 있다. 그 아래는 얼음인지.. 물인지 알수가 없는 풍경. 마치 솜털같이 가벼워보이는 안개같은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오라 유혹하고 있는 듯 하다.
나는 제일 마음에 드는 외투를 입고 문을 나선다. 이대로 집을 나서면 내가 찾고자하는 에메랄드빛 건물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듯이..
걸음은 가볍고, 바닥의 눈과 얼음은 나를 미끄러뜨리려 하기보단 땅의 단단함을 부드럽게 상쇄시켜주려 존재하는 듯 하다.
걸음이 안정되고.. 눈이 큰 그 아이가 떠오른다.
어젯밤 꿈에 언뜻 보였던 그 아이는 성인이 되어있었다. 완성체인 성인이.. 이제 갓 성인이 된 그 아이는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었으며 거침없는 파도소리나 움직임에 유독 더 놀라는 모습이었다.
성인이 된 그 아이는 유독 자유롭고 싶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제는 그때보다 많이 자유로울텐데 마치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을 보상받기라도 하듯이, 자신은 무척 강하고 자유롭고 용기 있고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는 듯한 동작들이 많이 보였다.
아마 난 꿈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런 말을 했었던것 같다.
"너무나 험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이란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도, 이해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해. 보금자리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노출된 아이는 누구에게서 보호받고 안전할수 있는거니?"
그 아이는 그런 나를 걱정하듯이 쳐다보다가 이내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앞으로의 계획들을 설명하며 과거따위는 다 잊은듯이 왁자지껄 웃음을 지어보인다.
실로 과거는 잊혀지는 것이다. 아픔도 고통도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치유가 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이 성인이 되면서 슬픈것은 그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표면적 상처는 없어지지만 마음속 상처는 고스란히 남아 훗날 그 어떤 일이 생겨도 체념하듯 인정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처음 주사를 맞을 때는 숨이 끊어질듯이 울고 난리를 치지만 두번째, 세번째에서는 좀더 의연해 지듯이. 단지 그런 것들이 슬프고 아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모든 과정에서 위로와 위안은 항상 어디서나 꼭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의미모를 말들만을 아득하게 한 후 꿈에서 깨어났다. 실로 성인이 된 존재는 좀더 가식적이고 좀더 산만하다. 머릿속은 좀더 다른 일들로 가득 차있고, 그렇기 때문에 좀더 의연하지만, 좀더 깊이가 얕게 마련이다.
실로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미완성의 물질이나 아직 작은 상태의 별은 큰 별에 의해 흡수될 수 있지만 완성체의 행성이나 항성이 서로 만나기 위해서는 두가지 방법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큰 충격을 견디고 하나가 되느냐, 아니면 중력에 이끌려 하나의 항성의 주위를 도는 떠돌이별이 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