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사람들의 도시
낯선 도시에서 네모를 만났다.
그 도시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다른 느낌이었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도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양철통 모양의 머리를 가진 로봇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여긴 어디죠??"
나는 왠지 모를 낯선 환경에 무서워져서 네모의 손을 꽉 잡은 채 묻는다.
"여긴 상처받은 사람들의 도시. 이기심 가득한 사람들이 잘 살고 있는 당신들의 세계와는 반대로 여리고 배려심 많은 사람들을 위한 도시랍니다."
"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런 도시가 어떻게 있단 말이지?"
양철로봇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주변에 신기한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는 남자아이의 옆에서 다그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감의 눈물을 흘려주는 부모들.. 강한 어조의 사투리를 쓰는 저돌적으로 보이는 직원에게 감성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조언해주는 부드러운 미소를 가진 여려 보이는 동료 직원들의 모습.. 그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지나친 폭력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강제 투여된다는 억제제에 대한 버스 정류장의 광고판의 모습이었다.
"억제제..?"
"네. 폭력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순 없죠. 이 도시에선 아이들이 예방접종을 강제로 맞듯이 최근에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거나 행사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선별하여 억제제를 투여하고 있어요. 가정에서 숨겨지거나 무시되고 있는 폭력은 아이들의 미래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과제로 추진되고 있지요."
양철로봇은 친절히 설명한다. 그리고 폭력을 완벽히 근절하기 위한 억제제 이후의 제도에 대해서도 설명해준다.
자연스럽게 억제제를 투여받는 사람들.. 왜곡된 가정폭력이나 학교폭력 등에서 해방되어 마냥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 자연스럽게 행복하고 예술성과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 중심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 그 어떤 인위도 가식도 답답한 틀도 느껴지지 않는 행복한 모습이었다.
말도 안 되는 도시.. 그렇지만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도시.. 그런데.. 어떻게 이런 곳에 오게 된 거지?
난 네모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네가 날 이곳에 데려온 거니?"
네모는 날 보며 해맑게 웃는다.
"잠시라도 어린 네가 편히 있을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에... 간절히 기도하며 잠이 들었는데 내 기도가 이루어졌네."
난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린다. 마치 그간의 아픔과 설움들을 한꺼번에 보상받기라도 하듯이.. 울고 또 운다. 그런 내 옆에 조용히 어깨를 내어주는 어린 네모의 옆모습은 낯선 도시의 석양빛을 받아 황색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팽창과 축소를 반복하다 언젠가 사라질 베텔게우스 별처럼.. 눈물범벅이 된 내 눈에 그렁그렁 아롱지며 붉고 크게 빛나고 있었다.
가끔은 현실이 낯설 때가 있다. 꿈이 현실보다 익숙할 때도 있다. 그리고 현실의 큰 가치보다 꿈속의 허황된 가치게 크게 느껴질 때도 있다. 삶이란 수치화되거나 정형화된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누구나 허망함을 느끼기 때문에 삶에서의 하루하루는 그 허망함을 덜어가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난 폭력으로 얼룩진 나의 과거를 보상받기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꿈을 가지며 살아왔는데.. 앞만 보고 달려온 젊은 날도 실은 그 폭력으로 얼룩진 상처라는 걸 어린 네모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하염없이 울고 또 운다. 그렇게 울며 어린 난 내 눈물로 젖어버린 네모의 어깨에서 잠이 든다..
잠이 드는 내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난 네가 세상의 나쁜 것들에서부터 벗어나 늘 행복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