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창가에 지는 새벽_5

이별 없던 세상

by Far away from

간절하게 에스메랄다를 찾는다.

뮤지컬 속 주인공들은 자유로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갈구한다.

각자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을 부르짖으며 사랑을 노래한다.

그들의 노래는 각자의 결핍을 잊어버릴 정도로 간절하고 열정적이다. 세상은 결코 완벽한 사람들이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나는 자신이 무척이나 새로운 것들을 접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익숙한 것들을 접할 때 느껴지는 편안함이나 안정감 등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을 한다. 그리고 더불어 자신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내 몸이 아파서 정신이 쇄약 해진 걸까, 정신이 쇄약 해서 몸이 아파지는 걸까.. 내가 제어하지 못하는 게 몸뿐이라 생각했는데.. 이젠 정신조차 내가 제어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 같아."


"훗.. 넌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너 자신을 죽일 수도 있어 보이는구나."


이제는 자연스러워진 눈이 큰 아이와의 만남. 우리는 꿈속에서도 7살에서 더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그러네.. 난 나 자신이 날 죽일 수도 있고.. 넌 네 옆의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널 죽일 수도 있는 상황 같구나.."


"..."


농담처럼 건넨 말에 희수는 말이 없다.


"미안.."


희수는 초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응시하다가 잠시간의 정적을 깨고 내뱉은 내 한마디에 날 물끄러미 돌아본다.


"아니. 좋아.. 너와 내가 어떤 식으로든 비슷한 상황이라는 게.."




사람이란 존재.

무척이나 고독하면서도 무척이나 고독하지 않으려 애쓰는..

말도 안 되는 '함께'라는 말에 안도를 하면서 또 지극히 고독한 상황에 노출되고 마는..

상실과 기대감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미완성의 존재.


희수와 난 지극히 차가운 바다의 넘실대는 파도를 바라보며 '따뜻함'을 느끼고 있었다.

타인의 말도 안 되는 학대에 노출된 희수와, 운명처럼 괴롭히는 자기학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난 어쩌면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행복하게 살면 되는데 넌.. 왜.."



희수는 나를 비슷한 류로 보다가도 가끔씩 날 자신이 없는 세상으로 내던지려는 듯한 말을 하곤 한다. 마치 자신이 있는 곳이 지옥이고, 네가 가야 할 곳은 천국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은 듯이..




"운명이라는 것을 믿기 시작했어. 때론 행복과 편안함에 젖어 생활하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쯤이면 내 몸은 미친 듯이 말을 듣지 않지. 정신과 육체의 불균형.. 난 결코 내가 잘하는 것들을 마음껏 할 수도, 편안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는 굴레를 지고 있어. 네가 떼어낼 수 없는 폭력적인 아버지가 있듯이.. 난 그런 존재가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하면 돼.."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눈빛으로 날 물끄러미 보던 희수는 무엇이 생각나기라도 한 듯이 내게 말을 한다.



"너와 내가 그런 굴레들을 가지지 않았다면.. 우린 어땠을까?"



삶은 마냥 행복하지도, 그리 안정적이지도 않다. 세상에 얘기되는 그 어떤 불행도 우리에게 당장 와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불행이 선고되는 순간 우리의 삶은 송두리째 다른 삶으로 변하고, 남아있는 시간을 없는 것만 못한 것처럼 불태워 버린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잊은 채. 아니 잊고 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 어떤 만남도..

그 어떤 이별도 자연스러운 세상..

그런 세상에서 희수는 이별 없던 세상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우리에게 불행의 굴레가 없었다면.. 그랬다면.. 너와 내가 만날 수 있었을까?"




조건으로 만나고, 이성적 판단으로 짝을 이루어 사는 것이 보편화된 시대에 한 아이를 만났다. 아무런 상식적인 이유도, 이성적인 판단도 작용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 아이. 나는 그렇게 가장 외롭고 불행했던 7세 때로 돌아가 기억을 새로 쓰고 있다. 마치 이별 없던 세상을 찾기라도 하듯이..


꿈은 삶과 죽음도 초월한 것처럼.. 꿈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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