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17 들꽃수목원 내 박물관
많이 보았던 사진이겠지만 저 두 주황색 원의 크기는 같다. 하지만 주변에 어떤 크기의 원을 비교 잣대로 쓰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나는 이 원을 보고 육아의 관점에 대해 생각했다. 같은 크기의 아이라 하더라도 어떤 잣대를 가지느냐에 따라 칭찬을 할 수도, 비난을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기준은 상대적인 것일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닐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부모들은 그 기준이 무척 객관적이라는 확신을 갖고 아이를 훈육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선생님과 직장의 상급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나는 무척 많은 말들로 인해 흔들렸다.
선생님의 학생부 기록에 내성적인 아이라서 좀 더 외향적이 돼야 한다는 말에는 맹목적으로 나 자신을 비난하고 외향적인 친구들을 동경했다. 나의 환경적 조건과 성향적 요소들을 모두 배제한 채 말이다.
또한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노래를 못한다는 말에 난 성인이 되서까지도 노래를 못한다는 트라우마를 갖고 살았고, 대학교 볼링 시간에 D를 맞은 이후로 난 운동신경이 없다 자책하며 살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난 그럴 필요가 없었고 날 평가했던 그들도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의 아이가 누군가의 평가로 인해 마음속에 장애를 가진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설득 수단으로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선은 직선이다. 아이가 바르게 가고 있더라도 비 뚫게 간다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느낌, 감각을 믿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아이가 바르게 가길 원한다면 격려하자.
직선조차 비 뚫게 보이고, 같은 원의 크기조차 다르게 보이는 우리이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