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27cy
비가 오는 한적한 골목 귀퉁이에 버려진 소파와 우산이 있다.
소파: 이런!! 내 몸속으로 비가 스며들고 있어..
우산: 하긴.. 네 몸은 가죽으로 덮여있지만 속은 비를 잘 흡수하는 스펀지라지? 빗물을 머금으면 많이 무겁고 춥겠구나.
소파: 응.. 하지만 찢어졌으니 울렁거리는 아픔을 참을수밖에..
우산: 어쩌다가 찢겨지고 버려지게 되었니?
소파: 난 원래 잘나가는 명품소파로 만들어졌어. 하지만 공정의 실수로 인해 미세한 흠집이 생기게 되었지.
우산: 저런.. 대충 다음 스토리를 알만하구나~ 그래서 결국은 증정용 선물로 전락해버렸겠구나?
소파: 그렇지.. 상품의 가치가 떨어진 나는 오너의 친한 친구에게 선물로 보내어 졌어. 하지만 수백만원의 가치가 있는 상품이 될수 있었던 나는 증정용으로 보내지는 순간 단지 싸구려 공짜 상품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어..
우산: 맞어..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하지만 귀히 여기진 않아..
소파: 주인집 아이들은 내 위에서 뛰어놀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고 나는 점점 망가져갔지.. 주인집 어른들은 처음엔 말리다가 나중에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체념해 버리는거야. 그리고 그들도 결국은 나를 밟고 올라가 형광등을 갈고 심지어는 내 위에 젖은 빨래를 널기도 했어.
우산: 저런 나쁜 주인들 같으니!! 돈주고 산 명품 소파라면 앉을때도 고귀하게 앉으려고 노력했을텐데..
소파: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뭐.. 내가 만들어질때 가졌던 럭셔리한 생활에의 꿈은 이미 점점 사라져갔지.. 현실에 체념하게 되었던거야. 그랬더니 그 생활도 만족할만 하더라구..
우산: 그랬구나..
소파: 하지만 만족하는 순간 불행은 찾아오게 마련이더라구. 처음 내가 만들어질 당시만 해도 그렇게 그렇게 보통 쇼파와 다름없게 진행되어져가는 과정이 만족스러웠는데..
우산: 네가 지금 말하는 불행이란 네가 버려진걸 말하는거니?
소파: 내가 버려진건 불행 정도가 아니라 절망이지.. 내가 말하는 불행이란 안타깝게도 나의 가죽이 아이들의 칼질을 버티지 못했다는 거야..
우산: 버릇없는 꼬마들 같으니라구!! 볼기짝을 실컷 두드려주지 그랬어!!!
소파: 안타깝게도 나는 그들을 편히 쉬게 하고 감싸게 하는 일만 배웠지 그들을 해치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 하지만 그런 나에 대해 불만을 가져본 적은 한번도 없어.
우산: 그렇구나.. 네가 나보다 천만배는 성숙한것 같구나..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찢어진것쯤은 꼬매서 다시 쓸수 있잖아. 안그래??
소파: 하지만 난 어차피 공짜상품.. 그들에겐 나의 가치보다 수선에 드는 조금의 돈이 더 크다고 느꼈겠지. 그들이 나를 버리고도 과연 아무렇지 않을까? 난 지금까지의 인생 대부분을 그들과 함께 보냈는데.. 그들은 얼마나 대단한 일들을 하기에 나의 인생 전부가 그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는걸까..
우산: 난 지금네가 얼마나 가슴 시리고 아플지 그게 더 걱정이 되는걸..괜찮니? 견딜만해?
소파: 버려진 아픔에 비하면 이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
우산: 하긴.. 나도 실은 주인의 어깨를 으쓱거리게할만한 멋떨어진 공주우산이었지~
소파: 아.. 그래보인다~
우산: 하하. 그래보이긴 뭐가 그래보여~ 이렇게 추한 몰골을 보고 그래보인다니.. 흠!!
단지 내가 너와 조금 다른건 나는 그에게 사랑받을때조차 헤어짐을 생각하고 있었단 거지.. 그 얼굴만 예쁜 여자애가 나를 평생 사랑해줄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구 또 내가 그여자애를 위해 평생 비를 막아줄 생각따위 같은것두 없었다구!!
소파: 왠지 너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것 같지 않구나?
우산: 왜이러셔~ 난 이래뵈두 진실만을 말하는 우산이라구!! 내가 전생에는 진실을 말하는 진실의 거울이었다는거 몰랐지?
소파: 흠..
우산: 아무튼.. 난 쿨하게 살았구.. 찢어진채 버려진 지금 이 상황이 조금도 낯설지 않아..
소파: 어쨌든 너와 난 버려진채 이곳에서 만난게로구나..
우산: 응... 근데 너 왜이렇게 떠니? 그따위 작은 상처에 거대한 몸집을 벌벌 떠는 꼴이라니~ 얼굴만 예쁜 예전 내 주인같으면 거침없는 욕설을 했을꺼야!!
소파: 그런가?
우산: 그럼~~ 그렇구 말구.. 안되겠다. 내가 비록 찢어지긴 했지만 너의 작은 상처쯤은 가려줄 수 있어. 이래뵈도 비를 막는데는 귀신잡는 해병도 나한테 못당한다는거 아니겠어?
소파: 고.. 고마워..
우산: 고맙긴... 네 위에 있으니 오히려 따뜻한걸.. 이렇게 따뜻하고 푹신한 소파를 왜 버렸을까.. 나쁜사람들 같으니라구..
소파: 너도 마찬가지야..
우산: 응? 뭐라그랬어?
소파: 아.. 아니야..
우산: 치.. 싱겁기는.. 몸채는 산만한게 왜이렇게 싱겁니? 혹시 버리기전 주인이 널 찍어먹어보지 않든?
소파: 안그러던데..
우산: 하하~ 바보.. 넌 아마 멍청하고 싱거워서 버려졌을꺼야
소파: 그 이유 말고도 많이 있겠지..
우산: 버려진다는건 슬픈일일까?
소파: 아마도..
우산: 근데 왜 난 슬프지 않지?
소파: 슬퍼하는 법을 잊어먹었나보지..
우산: 그럼 나같이 슬픔을 잊은 것들로 세상이 온통 가득차는 날이 온다면?
소파: 더 슬프겠지..
우산: 역시 그럴까?
소파: 하지만 재미는 있겠다..
우산: 뭐가?
소파: 너같은 것들이 많다면 말야.. 확실히 나같이 우울한거보단 너같이 밝은게 좋아보여
우산: 내 칭찬한거야?
소파: 그런것 같아.
우산: 너!! 날보는 시선이 음흉해보여!!
소파: 가까이서 보니까 찢어지고 못생긴 우산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더 있는 것 같구나..
우산: 어머머!! 있긴 뭐가 더있어!! 너 변태구나?? 나 절루 갈래!!
소파: 흐음..
우산: 내가 가니까 춥지?
소파: 확실히 네가 있을때보단..
우산: 휴~ 어쩔수 없군.. 이놈의 인기..
시간은 흘러 흐린 하늘에 구름이 더 끼어 어두워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저녁 무렵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 귀퉁이에는 찢어진 소파와 찢어진 우산이 포개져 있었고 그 위에는 가로등이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