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삶.. 그리고 함께라는 기억 속의 우리..

무언가를 하는 것에 있어서는 항상 쓸쓸함이 동반된다.

by Far away from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있다가 흥행에 성공한 인기 작가들의 흔한 인터뷰.


'저의 아내가 고생이 많았습니다. 변변찮은 날 뒷바라지해주느라 가슴은 숯검댕이가 되었을 거예요.'


무언가를 창작하는 것은 고통이 동반되고, 그 고통은 결코 한 명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나는 글을 전문으로 쓰는 사람도 아니고, 전공도 틀리고, 살아온 길도 글을 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시간이 나면 글을 쓰려하고,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잠시 스쳐 지나간 생각이라도 메모 해 놓았다가 시간이 날 때 관련 화두에서 파생되는 문장들을 정리하곤 한다.


공대를 나와 건설회사를 들어갔고, 두 번째 직장도 플랜트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나로서는 회사에서 메모를 즐겨하는 편이 아니다.


항상 메모하여 스케줄을 정리하고 같은 업무 패턴들을 정리해 놓아 다음 업무를 수행할 때 손쉽고 빈틈없이 처리하는 모습들을 보면 부러워하곤 하지만, 정작 또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계속 까먹고 메모를 놓치거나 버릴 종이에 메모하여 기록을 남기지 못하곤 한다.


그런 내가 떠오르는 좋은 생각들은 악착같이 한글 자라도 남겨 놓으려 한다.


때론 너무 짧게 메모해 놓아 시간이 지난 후 그 메모를 보면 마치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듯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하고, 그러다 생각이 났을 때는 벅찬 환희에 휩싸인다.


현재 나의 글은 잘 포장해서 가격을 높여 상품화하는 성격이 아닌, 나의 현재, 과거, 미래를 기록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내가 이때 이런 생각을 했고, 나는 이런 사람이고, 특히나 아이들이나 아내와 이런 교감을 나누었다..


하지만 브런치의 글을 처음 쓰게 된 의도는 지독한 상실의 순간을 경험하고 난 후 아내와의 믿음과 사랑을 다시 회복하기 위한 과정을 기술하고 싶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 마음이 어떻게 정리가 되는지, 깨지고 상처 입었지만, 그 안에서 진짜 사랑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에 무척 힘들고 고된 과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내가 지금까지 가져왔던 가치관을 깨는 과정이었으며, 끊임없이 모든 삶의 실마리들을 새로운 공식 속에 계속 대입시켜 봐야만 했다.


다행히도 아이를 통해서도 많은 영감과 깨달음을 얻었으며, 지인들이나 주변의 모든 상황들로부터도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내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아직도 성장 중이며, 그 성장 속에서의 성장통은 항상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 다음부터 자유를 얻었다는 명목 하에 내가 좋은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녔으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회생활은 내 머릿속에서 단지 돈벌이 수단이라고 프로그래밍하고 그 외의 만남과 시간들에서 자유와 해소감을 탐닉하길 원했다.


가장 달콤한 열매를 주던 사람이 바로 내 아내였으며, 아내는 나를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방법으로 내게 남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칭찬받는 상황'을 내게 지속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상형에 가까운 아내가 내게 그런 말과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무척이나 행복한 느낌을 주었으며, 그 상황이 결코 경박하거나 가볍게 느껴지지 않아 내게 아내는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그런 아내와 함께 걷고 웃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미래를 얘기하고, 우리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아이를 함께 키우는 일 등은 고되지만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해 달콤한 칭찬만을 하던 내 아내가 표독스럽게 변해 세상에서 가장 험한 말들을 내뱉는 있어서는 안될 상황이 일어나고 말았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일어난 일은 결코 되돌릴 수 없으며, 단지 어떻게 해쳐 나가느냐가 중요한 단 한 가지 포인트가 된다.


사회생활과 집에서 모두 다 칭찬을 받지 못하는 남자가 된 나는 '결혼'과 '가장', '아버지'라는 타이틀 속에서 결코 달리 도망갈 곳을 찾지 못했으며,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맞이하는 것 같은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두려움을 느꼈다.


눈을 감고 내가 이런 시간을 느낀 순간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았다.


어렸을 때 절대적인 존재였던 어머니..

아버지는 자주 접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어머니가 내게 화가 나거나 날 야단칠 때, 나는 극도의 상실감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보다 더 작고 힘이 없던 나는 또다시 칭찬을 받기 위해 나 자신을 가다듬고 '칭찬받기 모드'로 나 자신을 감추고 꾸몄던 것 같다. 아니, 그때는 너무 간절했기 때문에 꾸민 건지 변한 건지.. 아니면 나 자신이 원래 그런 건지도 잘 몰랐던 것 같다.


다시 눈을 뜨고 현재의 나를 돌아본다.


아내가 준 한 번의 기회가 주는 안도감이나, 또다시 칭찬을 받기 위해 나 자신을 꾸미는 일 따위는 이미 한번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나 자신의 발전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더 발전해야 했고, 더 독립적이고 자주적이어야만 했다.


내 머릿속의 빈 시간을 글이나 영감으로 채우고.. 남은 부분은 운동과 육아에 대한 고민과 나와 내 가족의 미래에 대한 고민 등으로 채웠다.


하지만 내가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몰두하면 할수록 아내는 더 외로움과 고통을 느끼는 것 같다.

아마도 현재 상황에선 풀 수 없는 육아의 고통을 받는 자신이 계속 해소하려 애쓰는 내 모습에 상반되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 같아 보인다.


아내와의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길을 알기 위해 몰두했던 수단들이 오히려 아내에게 외로움을 가져다주는 웃지 못할 상황 속에서 난 또 한번 성장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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