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또 다른 기회-2

제2차 자아 성장기

by Far away from

숙소에 들어와 한참을 각자 시간을 보냈다. 점심을 늦게 먹었기 때문에 허기가 지지 않았고, 오늘 하루 종일 게임을 하지 못한 민재가 게임을 하고 싶을 것이라 예상되었기 때문에 마음껏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고 싶었다. 계속 새로운 게임을 깔았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민재. 요즘은 '타이쿤'이라는 장르에 꽂혀 타이쿤 류의 게임을 다 깔아서 해보는 중이시다. 타이쿤이 무슨 장르인지 정확한 뜻을 검색해 보기 위해 검색해 보았더니 '경제적인 활동을 통해 무언가를 경영해나가는 데 초점을 맞춘 경영 시뮬레이션 장르의 게임'이라고 나온다. 확실히 민재가 어렸을 때부터 이런 장르의 게임을 좋아하긴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구체적으로 검색하며 해보는 민재. 참 좋은 능력이라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다. 비록 게임이긴 하지만.. 게임에 대한 편견을 갖은 편이 아닌 나로서는 그런 민재의 시도와 도전을 지지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나도 한참을 글을 쓰다가 8시가 넘은 시간이 되자 슬슬 밖에 나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민재는 해운대 시장에서 하는 공연도 좋아하고 아까 닭강정이 먹고 싶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민재야 8시가 넘었다~ 슬슬 씻고 나가볼까?"


자기도 한참을 했다고 느꼈는지 잠긴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럴까?"


우리는 레인 샤워기로 시원하게 씻고 밖으로 나간다. 새로 생긴 건지 우리가 전에 이용을 하지 않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토요코인 호텔의 욕실 천정에는 레인샤워기가 달려있어 편리하게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밖으로 나가니 공기가 무척 시원하다. 덥거나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딱 적당한 기온이라 기분이 좋다.


'아~ 해운대의 공기~!'


길을 걸어가는데 외국인들의 모습도 보이고, 연인들의 모습도 보이고, 동창생들 모임인듯한 나이 든 분들의 호기 어린 모습들도 보인다. 술에 거나하게 취해 목소리 높여 말하며 거드름 피우는 걸음걸이로 걷는 그들의 모습. 낯익은 모습이다. 전에는 정말 싫은 모습이라 생각했는데 오늘은 저 모습도 자연의 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들어감에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그들은 단지 주름이 지고 나이가 들었을 뿐 젊고 호기로웠던 그때와 다름이 없으리라. 단풍이 가득 진 가로수 옆을 지나가는 그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해운대 시장 옆의 공터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사람들이 모여있다. 민재는 다람쥐처럼 달려가 가장 좋은 앞자리를 차지한다. 아직은 키가 많이 크지 않아 사람들 앞으로 끼어들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자꾸 나에게도 옆으로 오라 손짓 하지만 내가 그 옆으로 갔다가는 뒤에 사람들의 반응이 뻔하다.


"민재야~ 아빠는 여기서 볼게 민재는 거기서 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손짓하다가 나중에는 내 손을 끌고 들어간다. 나는 자연스레 쭈그리고 앉은 자세를 취하게 된다. 그래도 민재 덕분에 앞에서 보니 잘 보이긴 한다.


공연은 우리가 전에 봤던 공연과 비슷한 구성이다. 사람은 바뀌었는데 비슷한 구성이면 누군가 저런 공연을 양성하는 사람이나 기관이 있다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불쇼와 탈출 마술 댄스나 유머 등을 조합해서 사람들의 반응을 유도한다. 조금 식상하긴 하지만 보다 보니 또 몰입하게 된다. 전부터 민재는 공연이 끝나고 돈을 주고 싶어 했으나 제대로 준 적이 없었다. 이번엔 주리라 생각하고 지갑을 봤더니 만 원짜리밖에 없어 만 원짜리를 주고 오라고 민재에게 쥐어 준다.


'아이고 돈 아까워!!'

라는 마음이 들지만 공짜로 공연을 보는 버릇을 들이는 것도 정서상 좋지 않을 거란 생각에..


공연이 끝날 무렵 민서에게 영상통화가 온다. 민망하고 미안했지만 이내 저 사람을 귀신이라고 하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민재와 내가 떨어져서 이 곳에 온건 말도 안 되지만 귀신을 잡으러 갔다는 핑계로 온 것이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지만 민서는 믿는 눈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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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서야~ 저 검은 옷 입은 사람 보이지? 저 사람이 귀신이야~ 아까 불로 막 사람들 괴롭혔어~"


"진짜? 저 사람이 귀신이야? 저 검은 옷?"


"으응;;"


민서야 미안해.. 생각이 들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공연을 보고 나서 해운대 시장을 둘러본다. 둘러보면서 민재와 이야기를 나눈다.


"민재야~ 너 점심에 먹은 돈가스 무척 느끼했는데 치킨강정 또 먹게? 민재 밥류 좋아하니까 우리 복지리 먹으러 갈까?"


"아니~ 나 치킨강정 먹고 싶어~~~"


"민재 속 안 느끼해? 밥류 먹는 게 낫지 않아?"


민재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한다.


"아빠~ 그럼 우리 각자 먹고 싶은 거 따로따로 먹으면 되지~"


민재의 그 말에 나는 다시금 놀란다.


'정말 많이 컸구나'


민재의 그런 반응은 효율과 합리적인 것을 중시하는 요즘 젊은 청년들의 반응과 닮아있었다. 그 전에는 누군가 양보하거나 따라서 같이 하는 걸 좋아했는데, 이젠 나와 다르더라도 효율적이고 합리적인걸 선호하는구나.. 생각이 드니 민재가 정말 많이 컸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된다. 민서와 같이 무턱대고 자기 생각과 의견을 내세우는 1차 자아 성장기에 이어 민재는 지금 자신의 의견을 효율적으로 관철시키고 싶어 하는 2차 자아 성장기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이의 성장은 하루하루가 다른 느낌이다.


복지리를 먹이려는 나의 마음은 접어두고 민재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고 해운대 시장을 둘러본다. 닭강정을 파는 곳이 많이 없어 치킨을 한 마리 주문한다.


"아빠~ 나 어묵도 먹고 싶어"


전부터 한번 가보고자 했던 성국이네 분식점을 드디어 가보게 된다. 다른 건 먹고 싶지 않다 해서 어묵을 집어 먹는다. 4개에 3천 원. 근데 민재는 어묵보다 어묵 국물을 엄청 들이마신다.


"민재야~ 왜 이렇게 어묵 국물을 많이 먹어? 너도 속 느끼했지?"


"아. 그런가? 어묵 국물이 엄청 맛있는데??"


민재도 민망했는지 머쓱한 웃음 지으며 치킨을 찾아 호텔로 간다. 치킨과 같이 먹을 뜨거운 국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가는 길에 어묵과 어묵 국물을 포장해서 같이 가지고 간다. 편의점에 들러서 날 위로하는 하이네켄 한 캔과 더불어서..


호텔에 들러서 사 온 것들을 먹는다. 양도 적었고, 우리의 먹성도 좋아져서 사 온 것들을 남김없이 순삭 한다. 민재는 소화시키고 잘 것이 걱정되는지


"아빠 이거 먹고 나면 우리 언제 자야 되는 거지?"


난 민재를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민재야~ 넌 먹고 바로 자도 상관없어.. 내가 문제지!"


치킨을 먹고 민재는 잠시 핸드폰을 보더니 내 옆에 달팽이처럼 쏙 들어오더니 바로 코를 곤다.


'어지간히 피곤했구나 우리 아들..'


내 옆에 바짝 붙느라고 목이 꺾인 채 무척이나 불편한 자세가 되어버린 민재를 잠시 지긋이 쳐다본다.


'이렇게 날 좋아하는 너인데..'


자세를 바로 해주고 조명을 어둡게 해 주고 이불을 덮어준다. 미동도 안 하고 잠이 든 민재.


'피곤하지만 참 재미있는 하루였지? 사랑하는 우리 아들..'


그렇게 2019년 가을날의 부산 여행의 첫날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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