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또 다른 기회-3

모래성의 시대

by Far away from

부산 여행 둘째 날 아침. 거짓말처럼 눈을 떠보니 9시다. 민재도 코 막힘을 호소하고 뒤척거리긴 했지만 그때까지 내리 잤다. 커튼을 열어보니 따갑게 하늘 위로 한참 솟아오른 태양이 눈부시다.


'이런 햇살도 완벽히 막아준 암막 커튼이 정말 효과가 대단하구나!'


민재에게 물어본다.


"민재야~ 조식 뷔페 시간이 9시 반까지인데 지금 9시가 넘었어. 다른 데서 먹을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조식 뷔페 가서 먹을래?"


예상했지만 역시 민재의 대답은..


"조금이라도 조식 뷔페 갈래!"


서둘러 내려간 우리는 거의 비워버린 음식 통의 음식들을 쓰레기 청소하듯이 주워 담는다.

20191102_092253.jpg

민재는 카레에 밥을 비벼 먹고 나는 콩나물국을 들이키며 밥을 먹는다. 빠질 수 없는 빵도 구워서 오렌지 주스에 먹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대로 먹은 기분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나서 호텔방으로 다시 올라간다. 우리가 계획했던 일정과는 다소 차질이 생겼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고 10시 퇴실에 맞춰 카드키를 반납한다. 그리고 해운대로 가서 파도 놀이를 한다. 민재가 좋아하는 모래성 놀이.


모래성을 쌓고.. 파도로 인해 부서뜨리고..


손에 바닷물을 묻히지 않으려 하다가 신발만 된통 젖고 나서 포기하는 심정으로 나도 놀이에 빠져든다. 손으로 모래성을 쌓고.. 두꺼비 집도 만들고..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노래를 부르니 민재가 까르르 넘어간다.


"민재야 왜 그래?"


"아니~ 노래가 잘 들으니 웃겨서~ 헌 집을 줄 테니 새집을 달래잖아~"


나도 잘 생각하니 웃겨서 같이 웃는다.


"진짜 웃기네~ 키키"

20191102_100535.jpg

해운대 바닷가에는 갈매기들이 가득하다.

그중 한 갈매기는 파도가 안치는 곳 언저리에서 멍 때리며 서있다가 거센 파도가 쳐서 날개까지 적시자 깜짝 놀라서 파도 바깥으로 달려 나간다. 그 모습을 민재랑 같이 보다가 갈매기도 우리랑 다름이 없이 노는 것을 보고 낄낄거린다.

20191102_100444.jpg

"민재야~ 저 갈매기도 우리랑 똑같네~ 날개가 달렸으면 날아가면 되는데 놀라서 뛰어가는 것 좀 봐~"


"그러게~ 저 갈매기 너무 귀엽다. 갈매기 키우고 싶다~"


오늘따라 파도가 더 들쭉날쭉이다. 모래성을 견고하게 지었지만 들쭉 날쭉한 파도에 또 부서지기를 반복한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저런 모래성의 시대가 아닐까? 견고한 것을 굳건히 이룩하고 지키고 소유하는 것보다.. 잘 부서지는 모래성과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짓고 부수 고를 반복하는 시대. 그런 자유로움과 변화가 더 자연스러운 시대가 아닐까? 모래성의 시대.. 심각하기보단 재미있게 살고 싶다.'

20191102_104617.jpg
20191102_105156.jpg

'난 너에게 사명감을 갖고 원하는 걸 쟁취하려는 투사가 아니라 난 너의 아빠이다. 부서지지 않는 모래성은 재미없다. 난 재미있는 아빠이고 싶기 때문에 기꺼이 부서지리라'


한참을 놀다가 우리는 단골 사우나인 힐 스파로 향한다. 찜질방 사전예약을 해 놓아서 조금 싸게.. 힐 스파엔 사람이 많이 없었다. 사우나에서 민재와 수영도 하고 물싸움도 하고 신나게 놀았다. 노천탕에서도 즐기고 물폭탄 싸움도 하고 하다 보니 시간이 한참 갔다.


"민재야 우리 이제 찜질방으로 가볼까?"


"그래~"


민재와 난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찜질방으로 간다. 이 곳에도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이 정도 시설에 사람까지 이렇게 없다니.. 정말 집 근처에 있다면 계속 오고 싶을 정도로 괜찮은 곳이다.

20191102_124311.jpg

우리는 식혜 큰 것과 계란 6개, 꼬깔콘 등을 사서 먹기 시작한다. 호기심 많은 민재는 보석사우나, 청옥 사우나 등등 다 둘러보고 잠시 휴식시간을 갖는다. 우리에게 할애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조금 있다가 우리는 그곳을 나와야만 했다. 예약해 놓은 열차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우나를 마치고 밖을 나오자 무척이나 기분이 상쾌하다. 온도도 적당하고 바람은 시원하고 몸을 깨끗하게 씻고 나와 기분이 좋다. 1003번 버스를 타고 부산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문텐로드 역에서 탄 버스는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무척 많은 사람이 탔다. 숙소에서 바로 탔으면 앉지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한 시간이 좀 넘은 시간을 가니 부산역에 도착했다. 정든 부산의 버스 밖 풍경을 가슴속에 담아두려 애를 쓴다.


부산역에 도착하여 삼진어묵에서 어묵을 산다. 서울 경기까지 진출했다고는 하지만 이 곳에서 사서 먹는 것 같은 맛은 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에 잔뜩 사게 된다. 열차시간에 간당간당 도착한다. 3시 40분 기차를 타고 집으로 출발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버스 안에서 정리한 질문 몇 가지를 정리하여 서로에게 편지를 써보는 시간은 갖자고 제안한다. 그동안에 항상 돌아가는 기차에서 했던 행위이기 때문에 민재도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나의 질문은..


1. 요즘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지?

2. 요즘 민재에게 가장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누구인지?

3. 민서와의 사이에서 엄마 아빠가 해주길 바라는 행동이 있는지?

4. 게임에 대한 트러블에서 조정을 바라는 내용이 있는지?

5. 엄마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


이었다. 그런데 이젠 내가 스스로 정리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던 홍대 사건의 트러블을 놀랍게도 민재가 1번 질문에서 먼저 언급을 하였다. 요즘 가장 힘든 점을 아빠와 그때 일 이후로 아빠를 대하기가 좀 힘들어졌다고 쓴 것이다. 난 놀라기도 하고 이 일을 그냥 나 혼자 감수하고 넘어가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민재와 그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민재야~ 그때 민재가 아빠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고~'라고 했잖아. 그때 민재는 그 말을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한 거야?"


그때 일을 꺼내자 약간 머쓱한 표정으로 수줍어하며 이야기한다.


"그 말이 그렇게 아빠 기분 나쁘게 하는 말인 줄 모르고 얘기했는데 아빠가 너무 무섭게 이야기해서 아빠한테 얘기하는 게 좀 겁이 나.."


나는 민재가 오히려 이렇게 말해줘서 너무 고맙다. 그때 일을 말하는 것이 오히려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접어두려는 마음을 버리고 나의 그때 마음을 이야기한다.


"민재야~ 아빠는 민재에게 훈육을 하거나 잘못하면 혼내려는 마음으로 민재를 보지 않아. 민재가 무엇을 하는지 항상 신기해하고 관심을 가지고 친구처럼 대화하려는 마음으로 민재를 대해. 민재도 알지?"


"응"


"그런데 아빠가 민재에게 지적한 것도 아닌 밥 먹는데 팔을 좀 접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민재가 그런 말을 해서 아빠는 말 그대로 맨탈이 붕괴되는 기분이었어. 이해할 수 있어?"


"응. 맨탈붕괴 되었어?"


"응.. 민재가 생각해봐. 아빠 입장에서.. 부탁했는데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생각해봐. 그 말은 아빠가 민재에게 해도 기분이 좋지 않은 말이야."


"아 그래?"


아직도 그 말의 정확한 뜻과 느낌을 잘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대꾸를 한다.


'정말 그 말이 주는 느낌을 잘 모르고 한 말이구나~'


확신이 들며 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민재야. 아빠가 그렇게 말하고 행동했던 건 미안해. 하지만 아빠의 마음이 그때 너무 다쳐서 정상적으로 행동할 수가 없었어. 민재가 이해해 줄 수 있어?"


민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자 그럼 이제 민재가 이렇게 말해준 것을 계기로 우리 그때 일에 대해서는 완전히 화해하도록 하자. 괜찮아?"


"응~"


그리고는 악수를 한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나도 민재와 말로 풀고 싶었으나 그게 정답인지 몰라서 혼자 생각했던 부분을 민재가 먼저 말해주니 고마웠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갔다.


"민재야~ 아빠가 어렸을 때 태권도를 하면서 어떤 형아가 있었는데 그 형아는 욕도 많이 쓰고 행동도 과해서 아빠도 모르게 그 형아를 닮은 행동을 할 때가 있는 거야~ 혹시 민재도 그때의 아빠처럼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민재의 행동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많이 미치는 사람이 있을까 봐 두 번째 질문을 했어. 민재도 그런 사람이 있니?"


위와 같이 보충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재는 민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민서가 고자질할 때가 힘들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딱히 외부에서 민재의 행동과 말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없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민서와의 사이에서 엄마 아빠가 도와줄 부분은 없냐는 질문에 민서가 동생이라고 너무 민재한테만 말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것에 대해서는 계속 약속했듯이 민재가 잘못하지 않았는데 민재한테 오빠라서 참으라고 이야기 하진 않을 거라 약속을 한다. 그리고 하나 더. 요즘에 일어나고 있는 민서가 자기감정을 표현하는데 민재는 그 말의 어조가 주는 느낌이 거슬린다 해서 윽박지르고, 그로 인해 민서가 미안하다고 말하고 끝나는 패턴은 잘못되었고 그것에 대해서는 계속 민재에게 지적을 할 거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것에 대해서는 민재도 이해를 하고 인정을 할 것이라는 대답을 받는다.


다음 질문. 휴대폰 사용에 대한 마찰에 대한 질문. 엄마의 성향은 민재가 휴대폰을 볼 때마다 그만하라고 이야기하고 민재는 수시로 휴대폰을 확인하고. 아빠는 둘 다 이해가 가지만 둘 사이의 마찰이 일어날 때마다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 악의 사슬을 끊고 싶다는 아빠의 부탁에 민재는 평일에 15분 연속하여 게임을 하게 해 주면 수시로 보는 일은 없게 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하고 마지막 질문으로 넘어간다.


아빠와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

민재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로 최대한 둘만의 시간을 많이 갖고 집에 오면 보드게임 등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역시 애정의 갈구를 느끼고 아이가 참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민서도 이제 조금 자라고 엄마도 우리와 함께 하고 싶다고 여러 번 이야기하였기 때문에 그 안에서 최대한 둘만의 시간을 갖으려는 노력을 하겠다고 약속한다. 엄마에게 하는 부탁도 깨알같이 작성하고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편지를 쓴다.


나도 민재에게 편지를 쓰고 민재에게 보여준다. 민재의 친구 같은 아빠가 오랫동안 되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편지..


이렇게 부산 여행의 마지막 절차까지 모두 마친다. 마지막에 민재가 나에게 제대로 말을 해주어서 얻고자 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었다. 역시 부산 여행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기차에서 글을 정리를 한다. 슬슬 어둠이 깔리며 기차는 천안을 지나 동탄역에 도착을 한다. 한낮을 지나 저녁때쯤이 되면 하루가 마치 잘 익은 열매처럼 무르익은 느낌이 든다. 민재와의 사이도 더욱 농익은 느낌으로 민재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오해하지 않을게. 너와의 믿음을 의심하지 않을게. 사람이라 잘 되지 않고 이번에도 실수하였지만... 노력할게! 사랑해 민재야~ 너와의 값진 여행의 추억을 또 하나 간직한 채 나는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

20191102_162047.jpg
20191102_162100.jpg
20191102_162217.jpg




기차여행


기차


부산



이전 21화위기는 또 다른 기회-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