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월의 향기.
요즘의 민재는 나와 놀 때 날벌레가 날아가면 '포송이다!'라고 말하며 지켜주려 한다.
착한 날벌레라 말하며 우리가 노는 것을 구경하며 지켜주는 존재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집안에 날벌레가 많은 것도 아닌데 희한하게도 우리가 둘이서 놀 때면 '포송이'는 귀신같이 날아와서 우리 주변을 한 바퀴 돌고 가곤 한다.
긴 여행을 갔다 와서 피곤할 법도 한데 민재는 계속 나에게 새로운 놀이를 같이 해달라 조른다.
가끔은 짜증도 내고 딴청도 피우지만, 이내 마음이 불편한 나는 민재의 바람대로 새로운 놀이를 찾기 시작한다.
희한하게 민재와 둘이 노는 시간은 고요하고. 좋은 음악이 흐르고. 그에 따른 스토리도 있고 감동도 있다.
항상 예상하지 못한 말을 툭툭 내던지며 나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고, 웃음과 행복과, 애잔함과 아련함 등.. 오만가지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
어제는 '할리갈리'라는 게임을 하는데, 지금 숫자를 천천히 세기도 벅찬 아이를 배려해 종을 늦게 치거나 크게 치는 시늉을 해서 민재가 미리 알아채 먼저 종을 치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종을 한두 번 치다가 오히려 내 손을 끌어당겨 나에게 먼저 종을 치도록 했고, 그런 한번 이기고 한 번 지는 평화로운 상황 속에서 행복을 얻는 듯했다.
나는 당연히 승리를 통해 행복을 얻을 거라 생각하고 져주려 했는데..
'민재야. 민재가 계속 종을 먼저 치면 이길 수 있어. 왜 아빠 한번 민재 한번 치기를 바라는 거야?'
'우린 똑같아야 하니까.. 똑같아야 좋으니까!'
사람은 모두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누구는 투쟁을 통한 성취에서 커다란 만족감을 얻는 반면에 누군가는 평화로운 상황 속에서 만족감을 얻는다.
하지만 모두 평화롭길 바라지 않기에, 평화롭길 바라는 아이에게 자꾸 투쟁심을 강요한다.
그리고 험악한 아이가 억지를 쓰거나 못된 어른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저지를 때를 가정해 교육을 하고, 자신의 성향을 버리고 투쟁하고, 싸우고, 이기는 것을 가르치려 한다.
내가 살아왔던, 버텨왔던, 무척 비합리적인 상황에서 살아남았던 원동력이 되었던 능력들을 내 아들도 갖추길 바라고 원치 않는 태권도나 거친 운동을 배웠으면.. 하고 바란다.
그런 나 자신의 민재의 순수한 모습 속에 투영되어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 아이가 이대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내게 너무 보석 같은 아이는.. 지금 자고 있다.
자고.. 자랄 것이고. 더 되바라져가고, 더 강해지는 동시에 모든 것들에 무뎌져 가겠지.
아이가 자라는 것이 너무 아까워.
서둘러 처음이고 싶다.
예상하여 좋지 않은 상황을 가려할 만큼 커버리기 전에..
항상 나를 따르고 나와 똑같은 것이 절대적으로 좋다고 믿는 시기에..
너의 웃음을 보는 것과 너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현재 내게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빠와 더 놀고 싶다고 오열을 하며 잠드는 아이.
출근하는 소리에 깨서 전화하며 또 한 번 오열하는 아이..
존재라는 것이 이렇게 아름답고 또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