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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시

이름 모를 나

by Far away from

태초의 난 이름조차 없는 날것에 지나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명찰을 끼워주고

옷을 입혀주며

공간을 내어준다.


공간이란 누군가에겐 쉼과 안식을

누군가에겐 감옥과도 같은 억압을 느끼는 것일 텐데

나에게 공간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름 있는 밥을 먹고

이름 지어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나의 물건들을 있어야 할 곳에 정리하고 있지만

정작 난 나의 자리를 찾지 못하겠다


가끔씩 멍해져 이 곳의 내가 낯설어지거나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없거나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보낼 희망 없이 그저 해야 할 것들을 시간에 쫓겨하고 있을 때면


애써 사명감과 소신을 갖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나

과거에 불운한 시대상으로 무언가를 쫓기듯이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넌 그래도 나은 편이야'

'지금이 얼마나 살기 좋은 시절이니?'


공감 가는 수많은 말들과 다르게 공감가지 않는 건

지금 이 공간 속의 나.


거울 볼 시간도 없다는 핑계 속에

오늘도 내 기억 속에 희미해져 가는 나의 얼굴

그곳에 이름 모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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